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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

입력 2026-05-11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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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교사가 유치원 나이도 안되는 어린아이들 집어던지곤 했다"


"감옥방에 강제로 2개월 감금되기도…화장실 못가서 항아리에 소변"

"함부로 물 먹었다는 이유로 큰 생수통 절반이나 먹는 고문 당했다"

"가해교사 처벌없고, 항의한 아이들은 소년원"…제천 A아동시설 피해자들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학대 피해자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다섯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첫 번째로 집단 가혹행위 등을 주로 다뤘습니다. 2∼5번째 기사는 다양한 양태의 물리적 폭력, 정서적 폭력, 성폭력,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이 시설 원장의 입장은 이 기사 아랫부분에 수록했습니다.]




백승현 A아동양육시설 피해자 비대위원장

2026년 5월5일 고아권익연대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백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운동장 1천바퀴를 돌도록 했습니다. 사마귀를 실에 묶어서는 어린아이 등 뒤에서 겁줘서, 계속 달리도록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생활지도사 선생님들(보육교사)이 유치원 연령대도 안되는 어린아이를 휙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그렇게 던졌습니다. 보육원 내에는 감옥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감금되면 2개월 이상 못 나오기도 했습니다. 감옥방 문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보육원 전체가 교도소였습니다."


"정수기 위에 있는 커다란 생수통의 물을 모두 마시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외에 물을 마셨다는 이유였습니다. 보육원 측은 식사 시간과 취침 전 예배 시간 외에는 물을 거의 금지했습니다. 머리핀을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꽂았다는 이유로 식사 금지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자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자기 겨드랑이 곁털을 뽑으라고 족집게를 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아프게 뽑으면 뒤통수를 때리거나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4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11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제천, 서울, 청주 등 참여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진행됐다.




시설의 보육교사가 아이들 때리는 장면

[A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제작]


이들 청년은 인터뷰에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시설의 폭력에 저항한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이들 가운데 18명이 보육원 측의 고소와 신고 등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아 소년원이나 보호시설 등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이어 "이런 아이들의 상당수는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을 받지 못했다"면서 "해당 시청은 관련 안내와 사후관리 등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또 "오랫동안 폭력을 행사했던 생활지도사들은 법적 처벌을 전혀 받지 않았고 여전히 같은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2013년 당시 원장이었던 사람만 겨우 벌금 150만원 판결을 받았는데, 그분 또한 2023년에 복귀했다"고 했다.


A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의 백승현 위원장은 "피해자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삶이 무너졌는데, 가해자들은 법적 처벌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뿐 아니라 시청, 경찰, 법원 등 관계기관들도 당시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며 "사건 처리 과정 전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국가 차원의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해당 시설과 재단이 해산돼야 할 정도의 심각한 아동학대가 있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 보육원 학대 사건에 대해 정밀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5월, 이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A시설에서 아이들 폭행에 사용됐던 몽둥이와 스테이플러

생활지도사들은 이런 몽둥이를 '사랑의 맴매'라고 불렀고, 스테이플러는 머리를 때리는데 사용됐다고 이 시설 출신 청년들은 말했다.
[국가인권위 사진]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은 이유입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인 여성 선교사로,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보육원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참여 청년들과 질문-답변


-- 보육원에서 가혹행위가 어느 정도 있었나.


▲ (하준)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어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았거나, 단체로 이동해야 하는데 시간에 맞춰 나오지 않으면 단체 기합이었다. 군대처럼 1명 때문에 전체가 처벌받는 식이었다.


-- 구체적인 가혹행위 행태는.


▲ (하준)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생활지도사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도구는 날마다 달랐다.


▲ (찬인) 집단으로 기합받을 때 선생님은 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인 말(馬)의 나무 손잡이를 빼서 때리기도 했다. 이걸로 손바닥을 무척 많이 맞았다.


▲ (하준) 그걸로 맞으면 일단 멍이 든다. 엉덩이를 맞으면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 (루아) 나는 여자아이였지만 유치원 때부터 아스팔트 위에서 그런 단체 기합을 받았다. 아이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맨 앞에 있는 아이 갈비뼈 부근을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맞은 아이가 뒤로 가면 또다시 맨 앞에 있는 아이가 발에 차여서 도미노가 일어났다. 이렇게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것을 반복했는데, 한번 기합받을 때 50번가량의 도미노가 있었던 것 같다. 오토바이 타는 자세로 서 있는 것, 오리걸음으로 이동하는 것 등은 기본이었다.




"제천시청은 책임져라"

"부모 없는 고아들의 인생을 짓밟은 제천시는 피해자들의 삶을 책임져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하는 고아권익연대
[고아권익연대 제공]


--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 또 다른 가혹행위가 있었나.


▲ (하준)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아주 어린 아이들을 바닥에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 피해 아동은 유치원에도 가기 전의 어린 아이들이었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구분이 없었다.


-- 아이를 던진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가.


▲ (찬인) 방식은 이렇다. 선생님이 아이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린다. 그러다 휙 던져버린다.


-- 어린 아이를 던지면 사망할 수도 있는데.


▲ (하준) 선생님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면 모여있던 아이들이 함께 받는다. 그래서 죽지는 않았다.


-- 어린 아이를 왜 던지나.


▲ (하준) 아이들끼리 싸웠다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


-- 집어던지는 장소는 어디였나.


▲ (하준) 주로 방에서 일어났다. 아스팔트 위에 던지면 죽을 수도 있다.


-- 새로 온 선생님이 던지는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하준) 생활지도사 여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기존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던지는지 시범을 보였다. 말을 안 듣는 아이가 있으면 이렇게 하라면서 시연한 것이다. 신입 선생님은 그렇게 배우고 나서는 실제로 어린 아이의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잡고서는 집어 던졌다. 아이가 아주 작으니 그것이 가능했다. 그때 던져진 아이는 나의 여자 동기인 OO이었다. 그 신입 선생님은 000이라는 분이었는데, 그 이후에 그만두셨다.




사마귀의 모습

A시설 출신 청년들은 어린아이들이 계속 뛰도록 하는데 사마귀가 사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SNS 캡처 사진]


-- 집단 체벌과 관련해서 또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 (지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아이들 모두를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는 1천 바퀴를 돌게 했다. 000 선생님이 정말로 1천 바퀴를 셌다. 아이들은 힘이 드니 근처에 있는 '장난감 집'에 숨기도 했다.


-- 1천 바퀴를 도는 게 가능한 일인가.


▲ (지훈) 운동장이 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1천 바퀴나 되다 보니 아침에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 1∼2시께 끝났다. 아침은 먹었는데, 점심과 저녁은 못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뛰었던 아이는 남자 방의 12∼15명가량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없었다.


-- 다른 방식의 집단 체벌이 있다면.


▲ (지훈) 어떤 날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뛰게 했다. 보육원 선배들이 사마귀를 실에 묶어서는 어린 아이들 뒤에서 겁을 줬다. 어린 아이들은 사마귀가 무서우니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오후 내내 그렇게 뛰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 어린 아이들에게 왜 그런 행위를 하나


▲ (지훈) 그 당시에 아이는 70∼80명이나 됐지만 생활지도사 선생님은 2명 밖에 없었다. 통제가 안 되니 이런 방식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즉 큰 아이들을 시켜서 어린 아이들을 통제한 것이다.


-- 당시 원장은 그런 체벌에 제동을 걸지 않았나.


▲ (지훈) 원장은 1963년에 이 보육원을 설립한 '마마'라는 분이었다. 지역사회에서는 '벽안의 천사'로 알려져 있다. 외부 사람들은 푸른 눈의 천사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이 원장은 이런 체벌을 방임하거나 묵인했다. 오히려 우리가 제대로 벌을 받는지 감시했다. 꾀를 부리는 아이한테 똑바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 (도영) 우리 때도 아이들끼리 싸우면 그 방 아이들 모두를 운동장에 불러서 100바퀴 정도 돌게 했다. 그것이 기본이었다. 당연히 체력이 떨어져 걷는 아이가 생긴다. 그러면 3층에서 지켜보던 마마가 그 아이만 100바퀴를 더 돌도록 했다.




2013년 국가인권위가 공개했던 제천 A아동양육시설의 타임아웃방(감옥방)

[국가인권위 사진]


-- 이 보육원이 운영했다는 감옥방은 어떤 곳인가.


▲ (제트) 나이대에 따라 감옥방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 때는 독방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교도소였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갈 때는 책상이 없었다. 마루 장판이 있었고 거기에 앉아서 성경을 읽어야 했다. 졸리면 그 옆의 모포에 누워 자기도 했다. 그런데 낮에 누워 있으면 마마가 와서 일어나 앉으라고 했다.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감옥방 문을 열어줘야 용변을 볼 수 있었다. 화장실은 하루에 3∼4번 정도만 갈 수 있었는데, 천천히 걸어갔다 오곤 했다. 감옥방에 들어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감옥방 밖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한테는 화장실에 갔다가 올 때가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 감옥 방에 한번 가면 기간은 어느 정도 있었나.


▲ (제트) 2개월 정도는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감옥 방에 갔는데, 모두 100번가량은 된다. 감옥 방에 들어올 대기자가 있으면 좀 더 일찍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감옥방 단골이었다.


-- 본인은 왜 감옥방 단골이 됐나.


▲ (제트) 나는 상대적으로 말썽을 많이 피웠다. 아이들과 놀다 보면 싸우고 욕설도 하게 된다. 좁은 방에 10∼20명의 아이가 살고 있으니 그런 일이 생긴다. 내가 친구한테 "이 새끼야"라고 하면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사무국장한테 일러바쳤다. 그러면 사무국장이 감옥 방에 보내라고 했다. 당시 사무국장은 보육원 내에서 판사였다.


▲ (지훈) 그 감옥 방 외에 비슷한 처벌 방이 또 있었다. 가동 건물 현관문 쪽의 3층 베란다인데, 그곳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바람을 피할 수도 없어서 추웠다. 벌레들도 들어왔으니 감옥방보다 힘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그 베란다에 한 달 이상 갇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영어 단어 외우는 것도 없었다. 그냥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했다.




"탈출하고 싶다"

A시설 출신 청년들이 감옥방의 느낌을 형상화한 제작물


-- 어떤 경우에 감옥방 처분을 받았나.


▲ (도영) 심하게 싸운 아이, 욕설한 아이, 마음대로 현관문 밖으로 나간 아이 등이 감옥방 대상이었다.


-- 도영 씨 본인은 감옥방과 관련해 어떤 경험이 있나.


▲ (도영) 내가 받은 감옥방 처벌은 1주일이 기본이었다. 그 방에 가면 모든 것이 금지되고 시계 소리만 들리니 정신적 고통이 심했다. "왜 여기에 나를 가두나요?"라고 한마디 하면 감옥방 처분이 연장됐다. 한자와 영어단어를 외워야 했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감금이 연장됐다. 그러니 그 기간이 보름이 되고, 한 달이 되곤 했다. 시험은 가동 1층 000 사무국장실에서 진행됐다. 나는 팔뚝에 커닝 페이퍼를 써놓고 갔다가 발각돼서 두들겨 맞고는 연장된 적도 있다. 이외에도 감옥방에서 성경책을 빽빽이로(백지를 빼곡히 채워 쓰는 방식으로) 써야 했고, 감옥방에서 나가기 직전에는 반성문을 썼다.


▲ (지훈) 감옥방 기간이 1주일 정도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1주일이 기본이었고, 한 달 이상인 경우도 많았다.


-- 감옥방 크기는 어느 정도였나.


▲ (도영) 1.5평 규모의 정사각형 구조였다. 보육원 측은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그러니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항아리에 소변이 고여 있으면 들킬 수 있으니 그걸 조금씩 바닥으로 흘려서 마르도록 했다.


-- 감옥방에 갇히면 등교는 어떻게 하나.


▲ (도영) 보육원 측은 아파서 못 간다고 학교에 둘러댔다. 감옥 방에서 나와서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아픈 것은 다 나았느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감옥방에 갇혔었다는 말을 못 했다. 보육원 선생님이 보복 차원에서 또다시 감옥방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2013년 당시 시위하는 A시설 원생들
[A 시설 피해자 비대위 제공]


-- 물고문을 당한 원생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


▲ (루아)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됐을 때였다. 한 여름날 낮에 목이 너무 말랐다. 나는 식당에 있는 정수기 위의 생수를 몰래 마셨는데, 그걸 들키고 말았다. 화가 난 선생님이 생수통에 남아있는 물을 모두 마시라고 했다. 그 통에는 물이 절반 정도 차 있었다. 찬물을 대량으로 먹어서 몸이 벌벌 떨리는데도 계속 마셔야 했다.


▲ (예린) 나는 그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루아는 토하기까지 했다.


-- 목말라서 물먹는데 왜 처벌 대상이 되나.


▲ (찬인) 하루 가운데 식사 때, 취침 전의 예배 시간 외에는 물 마시는 것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목이 마르면 소변보러 가는 척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 물을 마시기도 했다.


▲ (루아)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그 물고문을 잊을 수 없다.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정수기 앞에는 가지 않는다. 플라스틱병 물을 사서 먹는다. 이외에 말도 안 되는 일로 처벌을 많이 받았다.


-- 말도 안 되는 처벌은 무엇을 말하나.


▲ (루아) 여자아이들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머리핀을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꽂았다는 이유로 식사 금지를 당했다. 마마가 그런 처벌을 결정했다. 우리는 학교 갈 때 항상 단체로 3층의 그분 방 앞으로 가서 인사를 올렸다. 그때 머리핀 위치가 틀린 아이한테는 "너 학교 갔다 오면 나 좀 보자"고 했다. 그 아이는 식사 금지 처분을 받았다. 앞머리를 몰래 자른 아이는 감옥 방에 보내졌다.


-- 머리핀 위치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 (루아) 우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도 완벽하게 뒤로 넘겨서 머리띠를 해야 하는데, 머리털이 조금만 흘러내려도 처벌 대상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의 고데기를 몰래 사용하는 일도 있는데, 이를 들키면 감옥방에 가야 했다. 안경이 조금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기 마련인데, 이것도 식사 금지 처분 대상이었다. 우리는 선생님들의 겨드랑이 곁털과 머리털의 새치도 뽑아야 했다. 곁털을 아프게 뽑거나 머리의 검은 털을 뽑으면 뒤통수를 맞았고, 벽 보고 서 있어야 했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사진]


-- 2013년 당시 국가인권위가 조사할 때 이런 실상을 제대로 이야기했나.


▲ (도영) 당시 보육원 선생님들은 "인권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보육원은 폐쇄되고 너희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은 무서워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말할 수 있는 나이의 원생들 상당수는 이미 보육원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 (지훈) 당시 인권위가 밝힌 것은 우리가 겪은 내용의 5%밖에 안 된다. 그리고 당시 원장이 퇴소생들을 모아놓고 미안하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권위 조사에 응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A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 1차 기사 질문-답변 끝)




아동양육시설의 이익단체인 한국아동복지협회 로고

[SNS 캡처 사진]


[※ 편집자 주= 연합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A아동양육시설 000원장에게 관련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000 원장이 연합뉴스에 보내온 내용을 압축한 것입니다,]


<000 원장의 입장>


저는 2012년 12월 1일부터 2013년 12월1일까지 1년간 원장으로 재임했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의 결정으로 2023년 4월 1일 복귀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복귀하였으나 복귀가 또다시 문제가 되니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깊이 고민하고 결정하겠습니다.


제가 퇴임한 이후에 보육원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그래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전 사안의 경우, 우리 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말하는 것은 사실인 부분이 있고, 사실이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등은 지자체가 결정하는 사안이며, 소년보호처분 등은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주고자 노력했는데 그 마음이 닿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현재 이 시설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일이 상처가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아픔 없이 자라나도록 모든 직원과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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