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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순혈주의 속 옛부터 혼혈인 '튀기'로 무시
윤수일 필두로 박일준 인순이 차별 딛고 스타 우뚝
다문화·이주노동자 배척 아닌 "다양성·공존 중시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코리안드림'을 쫓아 외국인이 이 땅에 몰려들기 전까지만 해도 혼혈인은 구경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들을 낮잡아 부르던 '튀기'라는 말에는 순혈주의의 배타적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세기 이가환의 어휘집『물보(物譜)』는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난 잡종을 '특이'라 적었다. 이 말이 사람에게 옮겨붙어 '트기'를 거쳐 '튀기'로 굳어졌다는 해석이 통설이다. 짐승의 이름으로 사람을 불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혼혈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기록이다.
6·25 전쟁은 그 벽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방인'조차 되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물렀다.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물음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는 철저히 고립된 삶이었다. 그 벽 아래에서 노래로 버텨낸 사람이 있다. 미군 조종사의 아들 윤수일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남다른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받았다. 공부를 잘해 지역 명문고(학성고)에 다녔지만, 학교는 배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공간이었다. 음악에 소질을 보인 그는 결국 노래를 택했다.
1976년 혼혈아 중심 밴드 '골든 그레이프스'로 데뷔한 그는 작곡가 안치행의 눈에 띄어 솔로로 나섰다. 그룹사운드로 출발했지만 트로트곡《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으며 스타가 됐다.
그리고 1982년, 잠실의 아파트 단지를 보며 직접 만든 《아파트》로 정점에 올랐다. 산업화 시대 잠실의 풍경은 윤수일의 목소리를 통해 불멸의 국민가요가 됐다. 그가 낮춘 차별의 벽 밑에 길이 생기자, 박일준과 인순이 같은 이들이 뒤따랐다. 윤수일이 겪은 것보다 더한 삐딱한 시선 속에서 이들 역시 가창력 하나로 세상의 시선을 견뎌냈다.
윤수일이 다음 달 1일 데뷔 50주년 콘서트를 연다. 그의 삶은 한 피부색이 다른 특별한 사람의 성공담이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편견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묵직한 증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문은 아직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이름은 달라졌을 뿐, 배제와 차별은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를 향한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울산의 고독했던 소년이 어느덧 칠순을 넘어 부르는 노래들이 다양성과 공존을 중시하는 새 시대의 합창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로 시작되는 《아파트》의 노랫말처럼.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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