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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분명한 규정 많아 의료현장서 혼선…자기결정권 존중돼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실효성 강화 필요…'의료 대리인제' 도입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100세 시대란 말이 유행하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웰다잉'(well-dying)이 조명받고 있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죽음을 뜻한다. 기대수명은 빠르게 늘었지만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의 증가 속도는 크게 뒤처지니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작년 정부 통계에서 기대수명은 평균 84세에 가까웠지만, 건강수명은 65세 정도에 머물렀다. 20년 가까이 늙고 병들어 삶의 질이 떨어진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연합뉴스TV 제공. 재배포 DB 금지]
특히 치료가 어렵고 통증이 심한 중증 질환, 치매처럼 생활에 문제가 생기거나 거동이 힘든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웰다잉은 중요한 문제다. 삶의 질과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데다,가족의 수발과 경제 지원까지 필요해 주변에 폐를 끼친다는 부담도 있다. 주목되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지는 현상이다. 특히 선진국처럼 우리도 자기결정권 개념이 점차 중시되면서 원하지 않는 치료,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의 발전적 변화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김 할머니 존엄사 소송 논란'을 계기로 약 10년 만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시술을 '연명의료'로 법적 규정하고,환자와 가족 의사에 따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체외생명유지술(ECMO), 수혈 등을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다만 물과 영양분, 산소는 환자 결정과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응급 시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제도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선 혼선과 허점이 많다. 현실에서 실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법규가 아직도 모호해서다. 이는 환자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 탓이 크다. 건강할 때 사전의향서를 작성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혀놓았어도 막상 응급이나 시한부 상황에선 의료진은 같은 질문을 다시 물어보고 가족 동의도 구해야 하는 현실이다. 가족은 부모, 형제, 자식을 보내고 싶지 않아 이성적 판단력이 부족한 감정적 상태가 되고, 의료진은 법적 소송 등 위험 탓에 '자기방어적 의료 행위'를 하게 된다.
가망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은 목숨을 연장해달라 부탁하고 의료진은 환자의 의학적 생명만 유지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 과정에서 환자 본인이 원치 않던 고통은 길어지고 가족의 경제적 출혈과 국가 의료 재정 부담도 커진다. 중증 질환에 걸린 부모님이 경황 없이 입원해 제대로 설명도 못 듣고 주렁주렁 몸에 줄을 매단 채 몇 달 또는 몇 년을 불행히 지내다 돌아가시게 한 게 후회된다는 사연을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국민 생활과 의료 현장에서 이런 불합리와 고통이 반복되는 걸 방치해서야 되겠나. 연명의료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속히 보완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 제공]
우선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환자 자기결정권을 충실히 보장하도록 개선돼야 한다. 본인이 의사를 법적 서류로 분명히 했는데도 현실에서 온전히 효력을 갖지 못하는 건 이상하다. 의향서의 구체성부터 강화해야 한다. 삽관, 항암, 투석 등 개별 처치를 받을 건지 미리 구체적 의사를 밝혀놓아야 혼선을 막는다. 다만 의학적 지식의 한계를 고려해 작성 단계에서 의료인이 참여해 전문적 조언을 주도록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 예컨대 '유사시 목에 구멍까지 뚫어 영양을 공급해도 괜찮은가?' 같은 실체적 질문이 오가야 한다. 의식 없을 상황을 대비해 의향서에 명시한 자기 의사를 가족들에게도 꼭 미리 알려놔야 한다.
주요 선진국처럼 '의료 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시 미리 지정해놓은 대리인이 가족 대신 환자 본인과 같은 지위에서 의사를 대변해주는 방식이다. 법적 위임과 전문 교육을 받은 대리인이 위임자의 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단계부터 참관하도록 하면 유사시 위임자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 의료인 역시 법정 대리인으로부터 확실한 의사를 전달받으면 소송 등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불필요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응급 상황이 아닌 중증 난치 환자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치료를 거부하고 통증 완화와 심리 지원만 받도록 호스피스 등 완화의료 서비스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존엄보다 가족과 의료진의 심리적 안도나 책임 회피에 방점이 찍힌 구조일지 모른다. 병상에 누워 링거를 꽂은 노인들에게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묻는 의사나 가족을 보긴 어렵다. 요즘엔 자연사, 존엄사를 옹호하는 의료인들도 있다. 그들은 영양 공급 중단까지도 환자 자기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가 기계로 영양분과 물, 산소 등을 공급받아 형식적 생명을 잇게 된 시간은 인류사 전체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죽음은 삶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그래서 삶을 마무리하는 무대는 그 '삶의 주인'이 누구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

[일러스트. 재배포 DB 금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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