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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쓸 기회 줄어들며 악필 늘어
대학서도 채점 골치…손으로 필기 유도도
글씨 교정 프로그램 참여하고 필사하며 연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글씨를 더럽게 못 써요. 자기도 못 알아보게."('꼼***')
지난 11일 네이버 한 '맘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그러자 "악필 교정 필수입니다. 저희 아이 친구는 고2 때 한 과목 중간, 기말 모두 악필 때문에 서술형 40점씩 감점 당했었어요. 전교 4등이었는데 결국 자퇴하고 정시로 의대 갔습니다. 고등 때는 악필 치명적인 문제니 지금이라도 글씨 교정본 사서 교정시키세요"(아***)라는 '격한' 공감의 댓글이 달렸다.
"수시로 특히 남자 아이들한테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채점하는 사람이 못 알아보면 아무리 잘 풀었어도 점수를 줄 수 없다고"(하***), "시험기간 서술 논술형 쓰기가 있어서 작년부터 글씨 교정학원 보냈어요"(꾸***)도 있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악필이 늘었다. 괴발개발 써놓아 남은 물론, 본인이 못 알아보기도 한다.
얼마나 손글씨가 귀해졌으면 '손편지'의 몸값이 높아지고, 악필조차 귀하다며 악필대회까지 열린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바른 글씨' 쓰기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초등 고학년부터 연필 쥐고 글씨 쓰기 줄어
초등학교 수업에도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글씨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경기도 초등학교 2학년 교사 이모 씨는 18일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저학년 때까지는 모든 활동이 다 손글씨로 이뤄지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태블릿을 활용하는 수업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손글씨를 쓰는 빈도는 전보다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특히 3학년부터 태블릿으로 에듀테크(교육 사이트)를 다뤄야 하는 수업이 생긴다"며 "태블릿으로 모든 수업을 해결하는 학교도 있고 아닌 학교도 있지만, 대체로 연필을 쥐고 손글씨를 쓰는 활동이 저학년 때처럼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손글씨 연습에 소홀했던 중고등학생은 필기를 하거나 서술형 시험을 볼 때 어려움을 겪는다.
중학교 2학년생 A군은 "프린트물에 필기를 하고 나중에 시험 공부하려고 보면 제 글씨를 제가 못 알아볼 때가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1학년생 강모(16) 군은 "시험 볼 때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글씨를 갈겨쓰는데, 안 그래도 글씨가 엉망인데 갈겨쓰기까지 하니까 선생님이 못 알아보시기도 한다"며 "분명 답을 맞게 썼지만 선생님이 잘못 보셔서 부분 감점이 됐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OMR(광학마크인식) 답안지를 색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필적확인란에 문장을 기재하거나 스스로 문제지에 풀이과정을 적는 상황 외에는 손글씨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다만, 수시 전형의 일종인 논술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긴 글을 정해진 시간 안에 손으로 써내야 한다.
대학생 조모(22) 씨는 "2023학년도 대입 준비로 논술학원에 다닐 때 글씨 가독성이 좋지 않아서 선생님이 글씨 교정을 권유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보던 서술형 시험과는 다르게 원고지 형태의 답안지에 거의 1천500자에서 2천자 정도를 적었는데, 그땐 그런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어서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대학서도 악필 골치…디지털 기기로 필기 금지도
대학 교수들도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할 때 애를 먹는다.
김기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변호사 시험이 컴퓨터 기반 시험(CBT)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학생들이 로스쿨 시험 답안도 수기가 아니라 타자로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답안지를 손글씨로 쓰던 것에서 이렇게 바뀐 지 2~3년 정도 지났다"면서 "수기로 써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리고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채점할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모(25) 씨는 "스스로 악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손글씨가 중요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서 딱히 교정하려고도 안 했다"며 "일상에서 손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시험을 볼 때만 최대한 신경 써서 적고 있는데, 답안지를 다 쓴 다음 검토할 때 교수님이 못 알아보실 것 같은 부분을 발견하면 그것만 따로 수정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대학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글씨 교정과 글쓰기 연습을 위해 디지털 기기로 타자를 쳐 필기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중앙대학교 4학년생 B(23) 씨는 "노트북 타자 대신 손으로 필기하는 게 규칙인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답안지를 받아보면 글씨도 문제고, 글을 타자로 치며 공부하면 실시간으로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머리로 글을 구조화하는 연습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시험을 논술 형식으로 보기 때문에 글 쓰는 방식을 익히도록 할 겸 교수님이 손필기를 유도하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태블릿 펜을 활용한 필기까지는 허용해 주시고 있지만, 규칙 취지를 듣고 스스로 공책과 필기구를 가지고 와 수기 필기를 하는 학생들도 수강인원의 절반 정도 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 16일 서울에 위치한 한 서점에서 샘플 도서에 고객이 필사해 둔 흔적. 2026.4.19
◇ 손글씨 연습하는 사람들…글씨 교정 프로그램도
이런 상황에서 '악필 대회'까지 등장했다. 손글씨 자체가 귀하니 악필도 대접받는 것이다.
지난 10일 접수를 마감한 '고함 악필 대회'는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글씨는 없다"며 악필이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이야기를 통해 삶과 감정이 담긴 글씨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다고 공지했다.
지난해 8월 부산 북앤콘텐츠페어에서도 '천하제일 악필대회'가 열렸다. "글씨 못쓰면 10만원 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 16일 서울 한 서점의 필사책 매대. 2026.4.19
그러나 악필 대회가 이색적인 이벤트라면, '바른 글씨'를 향한 노력은 꾸준하다.
필사의 경우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후 헌법이나 탄핵 결정문을 손으로 옮겨 적는 열풍이 일면서 재조명됐다.
의식적으로 손으로 필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직장인 이모(31) 씨는 "타자를 치는 게 너무 편하니까 그동안 손글씨를 굳이 쓰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편지를 썼다가 글씨가 너무 이상해서 스스로 놀랐다"면서 "노트북 메모장에 적던 걸 포스트잇에 수기로 쓰는 등 최대한 글씨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4년째 글씨 교정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김경옥(45) 씨는 "혼자 만년필로 기록하며 제 글씨의 문제점을 분석하다 온라인 필사 모임을 열기도 했었다"며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기록 자체는 좋아하지만 본인의 글씨에 대해 위축돼 있는 모습을 보고 교정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수강생은 30~40대가 가장 많고, 직업군으로는 교사·간호사처럼 업무상 손으로 글씨를 자주 쓰시는 분들이 대다수지만 일반 직장인들과 주부들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악필은 아니어도 '글씨가 조금 더 단정해지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가지신 분들이 수업을 많이 찾으신다"며 "공적 서류를 작성할 때 자신감이 생겼다거나 예쁜 글씨체 덕에 다이어리를 끝까지 쓰게 됐다는 등 글씨를 교정한 후 보람을 느끼시는 걸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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