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경기도 구리 동구릉은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동구릉에 가장 먼저 조성된 무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건원릉(健元陵)이다. 능호가 역사에서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조성 형식은 후대 조선왕릉의 기준이 됐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건원릉 '청완 예초의' [촬영 김정선]
지난 6일 건원릉에서 '청완 예초의'라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한식날에 억새를 베는 것이다. 조선왕릉은 보통은 매주 월요일 문을 닫지만, 이날 오전에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특별 개방했다. 건원릉의 봉분은 잔디가 있는 다른 조선왕릉과는 달리 억새로 덮였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청완 예초의는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나서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매년 한식날 건원릉에서 예초를 진행했다는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25년 5월 초순의 건원릉 [촬영 김정선]
올해 예초의는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됐다. 우산을 들고 선 관람객과 함께 이를 지켜봤다. 건원릉의 봉분은 꽤 규모가 크다. 능침 쪽에 다가서면 봉분에 있는 키 큰 억새들이 보였다. 사계절을 보내 희끗희끗한 빛깔과 갈색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사다리 등을 이용, 봉분에 올라가 억새를 베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관람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는가 하면 능침 곡장(울타리) 뒤쪽에 서서 지켜봤다. 자녀를 데리고 온 관람객도 있었다.
건원릉 억새에 관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인조 7년 3월 19일 기사를 보면 홍서봉이 건원릉에 관해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북도(北道)의 청완을 사초(莎草)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능 가까이 뻗은 잡목 뿌리에 관한 보고 중에 나온 말이다. 인조는 나무뿌리는 흙을 파서 자르면 되지만 "예로부터 그 능의 사초에 손대지 않았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으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건원릉지에는 옛날 봉릉을 할 때 사초를 함흥에서 옮겨왔는데, 이는 태조의 유명(遺命)으로 전해진다는 내용이 실렸다고 한다. 함흥은 그의 가문이 기반을 다졌던 지역으로 꼽힌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이라는 제목의 테마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실록 등에 따르면 태조는 화령부(영흥)에서 태어났다.
건원릉은 태종 시기에 조성됐다. 태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난'을 주도하고 아버지 태조가 아낀 인물들을 포함해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 태조는 신덕왕후가 1396년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서울 중구 정동에 정성을 들여 정릉을 조성했다. 자신의 능자리도 미리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건국 전 세상을 떠난 신의왕후의 아들인 태종은 건원릉을 조성한 이듬해 도성 안에 있던 정릉을 지금의 성북구 자리로 옮겼다.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조와 태종의 갈등은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원릉은 권력, 가문, 고향 등 여러 단어가 떠올려지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태조의 능인 만큼 석물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후대 조성된 왕릉 석물과의 차이를 일부 발견할 수 있다. 미술 측면의 조형, 자연경관을 고려한 조경이 없었더라면 조선왕릉은 적적했을 것 같다. 지난해 5월 건원릉을 처음 관람했을 때는 봉분에 푸른 줄기들이 자라 있었다. 역시 눈에 띄는 변화는 계절에 따른 모습이다. 이곳의 풍경도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라 또다시 변화를 반복할 것이다.
jsk@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