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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경련 필수약 '아티반' 생산중단 4개월째…의료계 "7월 이후 치료공백 걱정"
전문가 "필수의약품 정책, 환자 치료 '지속가능성'에 최우선 가치 둬야"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아이가 갑자기 온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킬 때 의료진이 가장 먼저 손에 쥐는 약이 있다. 바로 '아티반(성분명 로라제팜)'이다.
이 약은 뇌의 과도한 신경 흥분을 억제해 발작을 신속히 가라앉히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항발작제다. 응급실에서는 급성 경련이나 뇌전증 지속 상태에서 가장 먼저 투여되는 1차 치료제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몇 분의 치료 지연이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아 경련에 있어 이 약은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라 '시간을 멈추는 약'에 가깝다. 의료진 사이에서 아티반을 '응급실의 에어백'에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임상적 중요성이 큰 탓에 아티반은 현재 국가 필수의약품이자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 에어백이 꺼질 위기에 놓였다. 국내에서 아티반 주사제를 공급해온 일동제약이 지난해 12월 생산 중단을 선언한 이후 이를 대체할 생산 기반이 여전히 안갯속이기 때문이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이미 위기감이 감지된다. 일부 병원은 보유 재고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르면 7월부터 처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현재 남아 있는 물량으로는 유효기간이 짧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며 "7월부터 (아티반의) 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장에서 직접적인 치료 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산이 끊긴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약을 만들어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수요가 한정적인 필수의약품은 약가는 낮게 묶여 있는 반면 생산 및 품질 유지 비용은 매년 치솟는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약사가 장기간 생산을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시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의약품부터 조용히 사라진다. 이미 일부 항경련 주사제와 응급 의약품이 비슷한 이유로 공급 중단 사태를 겪었고, 아티반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문제는 이 약이 다른 약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아제팜이나 미다졸람 등 유사 계열 약물이 존재하지만, 작용 시간과 지속 효과, 투여 방식에 차이가 있어 완전히 동일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일촉즉발의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은 '비슷한 약'이 아니라 '검증된 약'이다. 선택지의 축소는 곧 치료의 불확실성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필수의약품 공급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온 정부 정책의 허점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응급 항발작제는 상품이기 이전에 공공재다. 수익성보다 '지속 가능성'이 최우선 가치여야 함에도 현재의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채종희 희귀질환센터장은 "아티반 같은 필수의약품의 공급이 중단되면 환자들은 결국 수입 약을 비싸게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면서 "국가 필수희귀의약품 공급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필수의약품 공급망 안정을 위해서는 생산 원가와 관리 비용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약가 체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특정 업체에만 의존하는 독점적 구조에서 벗어나 복수 업체가 생산에 참여하는 '멀티 벤더(Multi-vendor) 체계'의 구축도 주문한다.
의료계가 공급 중단 위기에 긴장하는 것과 달리 식약처는 업체들끼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식약처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아티반의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업체 간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필요한 경우 행정적 지원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소아 경련 환자는 발생하고 있다. 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골든타임 안에 투여되는 한 앰플의 약이다. 만약 그 약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필수의약품은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자 안전망이다. 이번 아티반 사태가 업계에 미루기식, 땜질식 처방을 넘어 필수의약품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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