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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채찍' 망라한 강력 노동안전대책…"기업문화 변화 관건"

입력 2025-09-15 15: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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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요인 해결해 '산재 공화국' 오명 탈피 목표…싱가포르·일본 모델 차용


노동계 "현장 작동 위해 노력해야" vs 경영계 "경제 악영향 우려"




김영훈 장관,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5.9.15 uwg806@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옥성구 기자 = 정부가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오랜 오명을 씻기 위해 15일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서도 강력한 제재와 지원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범국가적 전략으로 산재 사망자 수를 대폭 줄인 '싱가포르식' 모델을 따라 처벌과 기업 인센티브 정책을 함께 제시했고, 인구·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일본식' 모델에 맞춰 취약계층 지원 등을 대책에 담았다.


이번 대책에 대해 노동계는 "현장 작동이 잘 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고, 경영계는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기업 문화 및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이번 정책의 성공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역대 정부 비교 특단의 안전 대책…처벌·인센티브 병행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재와 함께 안전 사각지대에서의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역대 정부들 또한 산재 감축을 목표로 노동안전 대책을 공개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건설·조선 등 고위험 업종 특별대책을 수립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위험성 평가 제도를 법제화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호 논의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윤석열 정부는 위험성평가 개선과 함께 자율·책임형 안전관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망사고 만인율은 작년 기준 1만명당 0.3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명당 0.29명)보다 많다. 2003년 1.24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산재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역대 정부의 안전 대책이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제대로 된 처방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사고 발생 시 재해자 행동은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 구조적 요인이 진짜 원인이란 것이다.


노동부는 역대 정부의 안전대책을 뛰어넘는 초강력 대책으로 올해를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랜 오명을 씻는 원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강력한 처벌로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법인에 대해 영업이익 5% 이내, 하한액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망사고가 빈발하는 업체는 등록 말소까지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산재 예방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는 확대한다. 안전시설에 대한 통합 투자세액공제 적용 범위를 늘리고, 우수기업에는 세무조사 유예, 정부포상 시 가점 등을 부여한다.


이런 제재와 인센티브 병행안은 싱가포르 사례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벌금 상한액 인상 등 산재 처벌에 채찍을 빼듦과 동시에 입찰가점 등 당근책도 내밀었다. 이에 10만명당 산재 사망자는 2004년 4.9명에서 2023년 0.99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외국인·특수고용 노동자, 고령자 지원책 등 인구 및 사회구조 변화에 맞춘 예방 대책은 일본식 모델이 참조됐다. 일본이 2023년부터 추진 중인 제14차 노동재해방지계획에는 외국인·고령자 특화 지원, 업종·사고유형별 가이드라인 제공 등이 담겼다.




이재명 대통령, 산재 예방 메시지 적힌 명함 SNS 공유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산업재해 예방 메시지가 적힌 근로감독관의 명함을 X(구 트위터)에 공유했다. [이재명 대통령 X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노동계 "현장 작동 위해 노력해야"…경영계 "지원 중심 정책 필요"


노동계는 이번 대책에 노동계 요구가 일부 반영됐다면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 현장 작동을 위해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산재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고무적"이라며 "다만 전체 산재 사망의 약 80% 이상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산재예방 대책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주노동자 등 산재 취약노동자에 대한 예방대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구체적으로 ▲ 50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재정지원 확대 ▲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범위 확대 ▲ 안전보건공시제 대상 사업장 확대 ▲ 영업정지·인허가 취소에 따른 하청노동자의 임금·고용 보호 장치 마련 등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번 대책이 성공하려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동자의 예방활동 참여를 위해 유급 (노조) 활동 시간 등이 보장돼야 하고, 현장 개선 사후확인을 위한 명시적 대책과 사고사망 외 다양한 산재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이번 대책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이번 대책은 기업경영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나아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전방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산재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처벌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기업의 자율안전관리체계 정착을 유도하는 다양한 지원 중심의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번 대책에서 등록말소 등 강력한 대책들의 주 타깃이 된 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 및 공사기간 보장 방안 등은 환영하면서도 지원보다 제재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쉽다고 전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주요 기업들이 성과만 추구하고 위험은 '외주화'하는 등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으니 책임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산재는 중소업체에서 훨씬 많이 일어난다"며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안전관리 시스템, 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 등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데 징벌적인 측면만 강화된 듯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형건설사 중에서는 적자가 난 곳도 많은데 산재 감축 성과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등 업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지원책 등이 빠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기업 문화 및 구성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도 중대재해처벌법 등 많은 법이 있지만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과연 법만으로 산재가 해결될지 살펴봐야 한다"며 "경영진과 중간관리자, 노동자 모두가 '사람과 안전이 우선'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가 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안전을 신경 쓰다 보면 공사기간, 비용 등이 늘어나고 기업에 부담될 수 있겠지만, 이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며 "영세업체들의 경우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사고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책 자체는 촘촘히 잘 짜여 있지만, 이제 어떻게 실행할지가 관건"이라며 "기업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성공의 열쇠일 것 같다"고 부연했다.


bookman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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