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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주치의 없는 대한민국-②

입력 2025-05-05 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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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필자는 직전 칼럼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행위별 수가제의 이면을 지적한 바 있다. 필자가 독자 여러분의 질문에 몇 시간씩 답변을 해드려도 보험에서 인정하는 의료 행위는 아니라고 밝혔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에는 진료 시간이 비용으로 책정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보험공단에서 비용을 주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비용을 줄까?


약을 처방하거나 검사를 해야만 비로소 보험 수가가 지급된다.


어느 병원에 가든지 약 아니면 검사를 권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각종 검사를 많이 하는 나라는 없다. 국민 10만명당 자기공명영상(MRI) 보유량, 검사 횟수와 내시경 검사 빈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세계 MRI 보유량을 조사했는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5위 수준이지만 그 통계에는 급여 통계치만 반영됐다고 한다.


비급여(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 검사 건수까지 반영된 공식적인 통계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OECD 평균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가 쇼핑하듯 병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진료받는 이른바 '호스피탈 쇼핑'이 무분별한 검사와 처방 남용에 기름을 붓는다.


"저 MRI는 전 병원에서 이미 찍었는데…"라고 하면 "각도가 좀 다르니까 여기에서 다시 찍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환자 개인이 지출하는 비용은 더 늘어난다. 정상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 정부개입의 반대급부


문재인 정부 시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이슈인 적이 있었다. 문재인 케어의 요점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많은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고 의료보험 수가를 깎았다. 개인의 지출은 줄어들겠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우선 병원과 의사의 소득이 줄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결국은 가장 큰 손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독자 여러분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국가에서 보험 수가를 깎으면 깎을수록 진료의 질만 나빠지고, 소극적으로 질병 치료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다. 그래서 문재인 케어를 실행할 당시에 의료계의 우려가 상당히 있었다.


원래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1960년대의 일본 의료보험을 벤치마킹해서 시작됐는데, 일본은 이를 환자의 편의를 최대한 도모하는 쪽으로 발전시켰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갖가지 문제가 줄을 잇는데 정부는 뒷짐 지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일로 떠넘겼다. 의료체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예가 당시의 질병관리본부 예산 수준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질병관리본부 예산이 가축 건강을 다루는 농림축산식품부 예산보다 적은 실정이었다. 결국 모든 손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병원 같은 데서는 한 환자를 앉혀놓고 2분 이상 이야기를 하면 적자가 된다. 수가가 그렇게 책정돼있다. 그러니까 의사를 만나서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2분 정도 지나면 '다음 환자 오세요' 하고 쫓아낸다.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의료와 모든 보건정책을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따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의료인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의료 현실은 슬프게도 환자의 건강을 얼마나 잘 지켜내는가 보다는 정부 예산을 얼마나 절약하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 의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


의사 본연의 임무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의 병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가정환경, 사회적 배경 등을 알아야 하고 환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일에서 최고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의사 혹은 의사 지망생들은 시험 성적은 최고일지 모르지만, 앞날을 꿈꾸는 야망과 목표가 부족해 보이고 현실 여건에 안주해버려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는 후배에게 가능하면 현재 인기 있는 과목을 선택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반드시 미래에 주목받을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러나 많은 후배가 이런 말에 잘 넘어가질(?) 않았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주요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이 지금 의사 지망생에게는 기피 과목이 됐다. 그 대신 응급환자가 없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이 많이 나는 과목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의사들의 의식 문제로만 치부하지만, 이 문제에는 의료보험 수가를 산정, 책정하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물질로 표현되는 의료 행위에만 보험 수가를 책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과다 검사, 과다 처방을 유도하는 아주 잘못된 정책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 관계라든가 상담에는 특수과를 제외하고 수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 또한 문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마치 쇼핑하듯 전전하는 모습을 볼 때,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계속)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더 자세한 내용은 엄융의 교수의 저서 '건강 공부', '내몸 공부' 등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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