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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항일 노래…"시대 아픔·위로 느끼길"

입력 2024-08-15 0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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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한형석 손녀 한운지 광복절 앞두고 특별한 연주


"할아버지 작품 더 연구됐으면…나라 위한 헌신 온전히 평가되길"




'항일 음악가' 한형석을 떠올리며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광복군가'·'압록강 행진곡' 등을 작곡한 한형석(1910∼1996)의 손녀 한운지 씨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할아버지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2024.8.15
yes@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우리는 한국 독립군 /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 나가! 나가! /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강의실.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자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가사를 읊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 몇 명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압록강 행진곡'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곡이 끝난 뒤, 연주자가 '새로운' 바이올린을 꺼내 들자 사람들의 시선도 쏠렸다.


여기저기 찍힌 흔적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 악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이며 문화운동가인 한형석(1910∼1996) 선생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이었다.




한형석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항일 음악가 한형석(1910∼1996)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 손녀인 한운지 씨는 이 악기로 '대한국행진곡'을 연주했다. 20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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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엿새 앞두고 열린 '독립을 그리던 그들의 이야기' 학술대회에서 한형석의 손녀 한운지(23) 씨는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대한국행진곡'을 연주하며 독립운동의 뜻을 기렸다.


한씨는 부산시립교향악단 비상임 단원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 역사의 결실과도 같은 광복절을 맞아 할아버지 곡을 연주할 수 있어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1년생인 한씨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부산 출신인 한형석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결성에 참여했으며 광복군에 합류한 뒤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곡' 등 다양한 항일 노래를 작곡했다.


1953년 부산에 '자유아동극장'을 설립해 명작 동화를 각색한 아동극을 무료로 보여주는 등 전쟁의 상처 속에서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한형석 선생

[부산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씨는 "연주를 준비하면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공부했다. 할아버지가 작곡하신 곡을 듀엣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낡은 바이올린에 담긴 '사연'도 연주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한씨는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처음 뵙는 자리에서 당시 두 줄만 남아 있었던 이 바이올린으로 '압록강 행진곡'을 연주해 드렸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당시 말씀도 못 하실 만큼 기운이 없으셨는데도 떨리는 손으로 엄지를 내보이셨대요."


추억이 담긴 악기로 연주하는 '대한국 행진곡'은 의미가 크다. 이 곡은 1940년 중국에서 처음 공연한 창작 오페라 '아리랑'에 수록된 것으로, 2020년 한형석 선생의 작품을 재조명하면서 알려졌다.




음악에 깃든 독립 의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을 그리던 그들의 이야기 ' 학술대회 행사장에 '한국행진곡' 악보가 놓여 있다. 20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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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할아버지는 이 부분을 작곡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떠올리면서 연습했다. 큰아버지께서 학술대회를 위한 할아버지의 친필 악보도 찾아주셔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망국의 한을 품고 이국땅에서 군가를 부르짖던 광복군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답은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바이올린에 있더라고요." (웃음)


그는 "군가라고 하면 힘찬 기운이나 에너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짙은 서정성이 깔려있다.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대한 위로,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씨는 많은 사람이 '한형석' 세 글자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운지

[한운지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할아버지가 작곡하신 곡이 100여 편이 넘는데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아 가족들이 아쉬워했다. 이번 연주가 향후 연구 작업의 밑바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미가 잊히지 말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씨는 "과거 할아버지와 독립운동을 함께 결의했던 동지 중에도 생활고를 겪을 만큼 어려운 분이 많아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도와주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영웅과 그 유족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도록 보장해드리는 게 우리가 누리는 혜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독립운동가의 삶이 온전하게 평가되고 조명받는 사회, 역사가 바로 선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광복군가집 제1집'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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