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젊은층은 '편리'…"비이용자는 대기 오히려 길어져" 불만도 나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이율립 기자 =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진료받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와 보호자들로 늦은 시간까지 붐볐다.
벽면 한편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오후 4시 기준 약 70명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예약자 이름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명단 절반 가까이에는 이름 옆에 노란색 병원 마크가 붙었다. 병원 예약·접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똑닥'을 통해 진료를 접수한 이들이다. 직접 병원을 찾아 접수한 환자들 이름 옆은 공란이었다.
병원 접수도 이처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일부 환자와 보호자는 장시간 대기의 수고로움을 덜었지만, 디지털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의료 접근성이 더 떨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촬영 이미령]
7년 전 서비스를 출범한 '똑닥' 앱의 누적 가입자 수는 현재 1천만명을 넘어섰다.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병원 접수를 대신하고 대기 순번에 맞춰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소아과 '무한 대기' 부담이 많이 줄었다는 반응이다.
이날 19개월 된 아이와 역삼동 소아과를 찾은 정모(31)씨는 "오후 2시 20분에 접수했더니 대기 인원이 30명 있길래 집에서 1시간 반 정도 기다리다 병원에 왔다"며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줄곧 앱으로 예약하고 병원을 찾고 있다. 주변 아이 엄마들도 대부분 앱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창신동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은 4살 아이 엄마 박모(37)씨도 "앱으로 예약하고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면서도 "앱 사용으로 아기들 진료받기는 편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현장 접수와 모바일 접수를 함께 받는 병·의원이 많아지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앱을 사용하지 않고 현장을 직접 찾는 환자와 보호자들로서는 그만큼 대기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X(옛 트위터)에는 일요일 소아과 대기 명단 사진을 공유하며 "1시 52분에 도착한 아이는 앱을 이용하지 않아 아직 대기 중인데 3시 5분에 도착한 아이는 앱으로 먼저 들어갔다. 아픈 애들 데리고 뭐 하는 거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기에 앱 운영사가 최근 월 1천원의 구독료를 받기로 하면서 볼멘소리도 나온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소아과를 찾은 조모(47)씨는 "우리 애들은 이제 많이 커서 앱을 쓸지 말지 고민 중이지만, 갓난아이 엄마들이라면 유료를 감수하더라도 앱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부 병·의원이 앱으로만 환자 예약을 받으면서 인터넷 맘카페에서는 "앱을 이용하는 병원에 예약하려면 무조건 구독할 수밖에 없는 상황", "울며 겨자 먹기로 유료 결제를 했다"는 게시물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똑닥 앱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더욱 곤란한 상황이다.
앱 이용자들은 하지 않아도 될 '오픈런'(병원·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달려 들어감)을 하는가 하면 자칫 늦게 병원을 찾았다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진다.
5살 외손자와 소아과를 찾은 박모(65)씨는 "진료가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하는데 7시 전부터 와서 기다리기도 한다. 진료 접수 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서 딸이 깔아준다고도 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X 이용자는 "어쩐지 어머니가 '한참 전부터 앉아 있어도 뭔가로 예약한 젊은 사람들이 느지막이 와서 바로 들어간다'며 요새 병원은 1시간 대기 진료가 기본이라고 하더라"며 "상대적으로 돈이 더 많거나 디지털 기기에 밝다는 이유로 서비스 우선권을 독점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나는 대기 걸어놓고 다른 곳에서 시간 보내다 2시간쯤 뒤에 들어갔는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신 할아버지는 병원을 보시더니 안절부절못하시다가 돌아가더라"며 안타까워했다.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정부가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필수의료 강화 관련 혁신전략을 발표한 19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3.10.19 psik@yna.co.kr
전문가들은 이같이 의료 분야에서 확산하는 디지털 사용을 의료 접근성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있는 만큼 공공 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병원에서는 공급자 편리에 기반해 이용자에게 (앱 사용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취약 집단에는 의료 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의료는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결국 병원을 이용하는 시스템에서 의료 접근성과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정부가 (모바일 앱 이용을) 공공으로 접근하는 등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already@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