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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74년 8월 15일 오후 7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으로 실려 온 육영수 여사가 최길수 교수의 집도로 5시간 넘게 이어진 사투 끝에 운명했다. 당시 수술 현장을 지킨 이애주 수간호사에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남았다. "한복 속옷을 기워 입고 계시더라고요. 듬성듬성 꿰맨 손바느질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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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는 '한센인의 어머니'로도 기억된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 냉대가 극심했던 시절, 전남 나주와 전북 익산의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 환자들의 손을 잡고 식사를 함께했다. 한센인 자녀들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전남 고흥 소록도의 의료시설 건립도 지원했다. 육 여사가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숨지자 그해 겨울 소록도 주민들은 그 뜻을 기려 공덕비를 세웠다.
육영수는 밝고 온화한 '목련꽃'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고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청와대에 영부인 업무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을 설치하고 말투와 옷차림, 시선 처리까지 꼼꼼히 연구했다. 남편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청와대 안의 야당'으로 불렸다. 박정희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은 "육 여사를 겉모습 보고 해석하면 백번 틀려"라고 회고했다.
육영수는 그렇게 신화가 됐다.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육 여사에게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검소하고 자애로운 그의 이미지가 박정희를 향한 반감마저 누그러뜨린 덕분이다.

1998년 7월 31일 청와대 전.현직 대통령 부부 만찬에 참석한 손명순, 이순자, 이희호, 김옥숙 여사(왼쪽부터)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동시에, 육영수가 남긴 '국모' 상(像)은 후대 영부인들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그늘이자 족쇄가 됐다. 이순자·김옥숙에서 김정숙·김건희에 이르기까지 역대 영부인들은 옷차림과 말투, 대외 활동과 처신을 놓고 끊임없이 여론의 칼날에 서고 구설에 휩싸였다. 정권이 몇 번이고 바뀐 지금도 예외는 없다. 최근 야당 의원이 김혜경 여사가 태릉 골프장에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영부인은 선출직도, 공직자도 아니기에 골프를 치는 것 자체가 문제 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무게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여론도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야당의 손쉬운 공격 표적이 되기 쉽다.
물론, 그 기저에는 여성을 남성의 그림자에 둔 채 희생과 헌신만을 미덕으로 요구하는 유교적 가부장 문화가 깔려 있다. 조신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영부인의 이상적 표준으로 삼는 '육영수 콤플렉스'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뉴욕=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뉴욕을 방문 중인 김혜경 여사가 23일(현지시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뉴욕가정상담소와 함께하는 추석맞이 송편 빚기 행사에서 제니퍼 리 반 셰프와 송편을 빚고 있다. 2026.9.24 xyz@yna.co.kr
대통령학 연구자인 함성득 교수는 저서《영부인론》에서 역대 영부인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육영수는 '활동적 내조형', 김옥숙은 '베갯속 내조형', 손명순은 '전통적 내조형', 이희호는 '연결망으로서의 참여형'으로 짚었다.
시대와 인물에 따라 영부인의 역할 모델은 달랐지만, 세상은 여전히 반세기 전 육영수의 모습에서 정답을 찾으려 한다. 여성의 위상과 국민 눈높이가 달라진 만큼, 영부인을 둘러싼 소모적 정치 공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대에 걸맞은 역할 정립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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