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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조국 독립 위해 싸우다 총살…박진순 선생 재조명

입력 2026-10-16 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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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33번째 인물 선정




'개벽' 폐간 당시 제작진들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소련의 정치 탄압으로 희생된 독립운동가 박진순(1898∼1938) 선생의 삶이 재조명된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33번째 인물로 박 선생을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1898년 연해주 니콜라예프카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인학교 교사로 일하다 1917년 러시아 2월혁명을 계기로 항일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하바롭스크에서 창립된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선출됐으며, 이듬해 코민테른 파견 대표로 모스크바에 건너갔다.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참석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실상을 알리고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소 외교활동을 지원하며 러시아 정부가 약속한 독립운동 자금 중 금화 40만 루블을 확보해 상하이로 운송하는 데도 기여했다.


1921년 이동휘·김립 등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창립을 주도했으며, 같은 해 11월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레닌과 직접 만나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모색했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국내 잡지 '개벽' 등에 춘우(春宇)라는 필명으로 일본의 식민지 경제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러나 1937년 12월 테러단체 가담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3월 19일 총살됐다. 1956년 소련 최고재판소 결정으로 복권됐으며,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끝내 광복을 보지 못했다"며 "후손을 찾아 희생을 기리고 잊혀가는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겠다"고 밝혔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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