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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고려신문, 연해주 항일운동 공적 재조명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이 항일투쟁의 최전선에 서서 강우규 의사의 서울역 폭탄 의거를 지원한 독립유공자 김치보(1859∼1941) 선생을 재조명하고 묘소와 후손 찾기에 나섰다.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서른 번째 인물로 김치보 선생을 선정해 삶과 공적을 재조명한다고 7일 밝혔다.
평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8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항일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신한촌에서 운영한 한약방 '덕창국'은 연해주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활동 방안을 논의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는 이범윤·조창호 등과 의병 조직 자금을 모금하고 한인 교육기관에 의연금을 냈다. 청년돈의회를 조직해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으며, 1910년에는 한일병합의 무효를 주장한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했다.
이후 권업회 통신부장과 신한촌 한민회 회장, 대한국민의회 상설의회 의원 등을 지냈다. 1919년 3월에는 덕창국에서 고령의 한인들이 주축이 된 대한노인동맹단을 조직해 초대 단장을 맡았다.

[독립기념관 제공]
대표단과 결사대를 국내로 파견해 독립만세운동을 이어가도록 했고, 강우규 의사의 국내 활동과 그해 9월 서울역 폭탄 의거도 지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러시아 지역에 설치하려던 아령총판부의 부총판에도 선임됐다.
이후 중국 훈춘으로 옮겨 살다가 1941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묘소 위치와 후손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는 "선생은 연해주 독립운동사의 주요 현장을 지킨 인물"이라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자료와 증언을 추적해 후손과 묘소를 찾겠다"고 밝혔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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