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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호칭 변경' 냉전적 사고 벗어나 냉철한 논의 필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한국 정부는 38년 전 오늘(8일) '중공'(中共)이라고 부르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中國)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 7일 발표한 '7·7선언'의 정신에 따른 것이다.
7·7선언은 북한을 고립시키는 종래의 정책에서 탈피해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남북교류를 활성화하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인도하려는 정책 전환이었으며, 러시아(당시 소련)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은 이런 중국에 대한 우호 제스처로 당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대만으로부터 "우호관계를 해치는 처사"라는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대신, 한국과 중국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2년 8월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고 양국 관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23일 평양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회의 2일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2026.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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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은 '적대적 2국가론'을 채택한 후 남한을 '한국'이나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남북관계의 단절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지는 과정에서 북한을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처럼 냉전시대 국호 문제는 '누가 그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는 합법 정부인가'를 둘러싼 이념 대결 차원에서 인식됐다. 국호 자체가 정치적 무기가 되거나 외교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한반도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은 체제 경쟁 속에서 각자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으로 부르지 않고 '남조선', '남조선 괴뢰도당', '남조선 당국' 등으로 불렀다. 남한 정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서울=연합뉴스) '멸공' 이라고 쓴 차량이 태극기를 달고 도로를 운행하고 있다/본사자료 1990. 10.
한국도 북한의 정식 국호를 쓰는 대신 '북한', '북괴', '북한 괴뢰도당', '북한 당국' 등으로 불렀다. 심지어 1991년 남북이 유엔(UN)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는 개별 국가로 인정받게 됐는데도 서로가 국가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간이 흘러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등으로 이어진 남북관계 호전 시기에는 남북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앞세워 '남측·북측'이나 '남측 당국·북측 당국'으로 부르며 서로를 '괴뢰 정부'로 여기는 행위를 자제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적 2국가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북한을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조선'으로 불러 반발을 사기도 했다.
북한의 국호 사용은 헌법에 위반될 수 있고, 북한의 2국가론에 동조하는 일이라는 것이 반발 이유다. 야당은 헌법 영토 조항(제3조)과 통일 조항(제4조)에 위배된다며 "공론화를 거쳐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정통성의 상징인 국호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사회단체들은 '평화적 2국가론'이 평화체제 구축이나 통일 국가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국내 7대 종단의 원로 지도자들도 이달 초 "상대의 이름을 존중하는 것에서 평화는 시작된다"며 남북이 서로 공식 국호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한반도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6.6.26 dwise@yna.co.kr
통일부도 평화적 2국가론이 국제법상 두 국가라는 것으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남북연합에서의 두 국가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어서 법적인 국가로 승인한다는 의미도 아니라서 위헌 소지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국호 사용 여부는 정치적 문제와 언어 습관이 동시에 작동한다. 북한의 호칭을 바꿔 부르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국민 모두가 어느 날부터 바꿔 부르자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나 역사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용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의 수용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호칭을 변경한다고 곧바로 사회적 언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 근거와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다양한 토론과 수용과정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중공 대신 중국으로 바꿔 부른 것은 단순한 호칭 수정이 아니라 상대를 현실의 외교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치적 신호였다. 북한에 대한 호칭 문제도 냉전의 언어를 계속 붙들 것인지, 새로운 현실에 맞는 언어를 모색할 것인지를 놓고 냉철한 사회적 논의에 나설 때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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