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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문서] 南이 건넨 김일성 사진 찢은 北, 깨닫고 "완전도발" 소동

입력 2026-06-30 1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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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초 북핵 회담 문서 공개…회담 격앙되며 南정보당국자 노출 정황도


타협 없는 대치끝 상호사찰 무산…"北 진정성·南 유연성 결여 결과" 평가




통일부, 90년대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서울=연합뉴스)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핵협상을 기록한 3천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를 30일 새로 공개했다. 이번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여덟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12) 과정과 그 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이 대상이다. 사진은 지난 1992년 4월 21일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3차회의 회의장면. 2026.6.30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1990년대 초 남북 간 북핵 협의 테이블에서 북측 대표가 김일성의 사진을 찢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협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남북회담 기록이 공개됐다.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핵협상을 기록한 3천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를 30일 새로 공개했다.


이번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여덟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12) 과정과 그 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이 대상이다.


통일부가 남북회담 문서를 묶어 발간한 '남북대화 사료집' 기준으로는 제14권 일부와 17~20권이다.


1990년대 초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9월 제46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 핵문제 협의 추진 용의를 표명하고 그해 11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을 내놓으면서 남북 간 핵 협의가 성사됐다.


남북은 협상 초기인 1991년 12월 '핵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91.12.26.~'91.12.31, 3회)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듬해인 1992년 1월 남북 합의에 따라 북측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성명을, 남측은 한미 연합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각각 발표했다.




통일부, 1990년대 초 남북간 핵문제 협의 과정 공개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통일부가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서른 두 차례의 남북간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최초로 남북 당사자간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로,「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이 담겨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당 문서를 살펴보는 장윤정 통일부 부대변인. 2026.6.30 dwise@yna.co.kr


7회에 걸친 대표접촉을 거쳐 남북 상호사찰 등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이하 핵통제공동위)가 구성됐으나, 그 후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공전했다.


북측의 지연 전술로 여러 달 동안 상호 사찰 협의에 진전이 없자 남측은 한미 연례안보회의에서 팀스피릿 훈련 재개 카드로 북측을 압박했지만, 북측은 외세를 끌어들인다고 강하게 반발, 팀스피릿 재개 철회를 선언하라는 요구로 일관했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1992년 12월 핵통제공동위 제13차 회의에서 공로명 남측 위원장은 외세와 결탁해 남침을 저지른 주체는 되레 북측이라며 참고자료로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이 게재된 남측 신문을 건네자 최우진 북측 위원장은 "그런 건 가져가라"며 보란 듯 사진을 찢는 행동으로 응수했다.


공 위원장이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느냐"고 말하자 최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동시에 "완전히 도발"이라며 반발, 한동안 소란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때 남북회담본부장을 지낸 정승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이 장면에 대해 "김일성 사진을 찢고 북한 대표가 당황하는 상황"이라며 "최 위원장이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개된 회담 문서에는 북측의 반발로 장내가 소란해졌다는 것 외에 최 위원장 등의 반응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지 않으나, 2021년 공 위원장의 구순을 맞아 후배 외교관·지인들이 펴낸 문집에 수록된 일화에는 최 위원장이 회담장에서 김일성·스탈린의 사진을 찢은 후 "사색이 됐다"는 전언이 담겼다.




통일부, 90년대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서울=연합뉴스) 통일부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회에 걸쳐 진행된 핵협상을 기록한 3천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를 30일 새로 공개했다. 이번 남북회담 문서 공개는 2022년 5월 첫 공개 이래 여덟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1991.12) 과정과 그 후 남북 대표 간 접촉 및 회담이 대상이다. 사진은 지난 1992년 4월 1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2차회의에서 양측 대표의 인사교환. 2026.6.30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남측 정보당국 소속 위원의 신분이 드러나는 정황도 담겼다.


1992년 6월 핵통제공동위 제6차 회의에서 북측이 남측에 미국을 추종한다고 폄하하자 남측 국무총리실 정책심의관 자격으로 참석한 홍모 위원은 "정책노선을 모독하는 언동"이라며 "그런 언행을 계속한다면 이 자리에서 아주 마지막 결론까지 낼 계획"이라고 발끈했다. 이에 북측은 "공 위원장이 앉아 있는데 거기 맨 말석에 앉아가지고 무슨 결론을 하느냐"(최우진)고 타박하며, "홍 위원은 다른 임무를 갖고 나온 것 같다"(박광원)고 꼬집었다. 위원장을 앞에 두고 일개 위원이 회의를 통제하려는 태도로 볼 때 정보당국(당시 안전기획부) 소속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남북회담에는 정보당국이 총리실 소속 '모자'를 쓰고 참여했으며, 이들의 이름은 남북회담 문서 공개에도 가림(비공개) 처리돼 있다.


신원 노출을 자초한 결과인지는 불확실하지만 홍모 위원은 이 일이 있고서 한 달 후 다른 인원으로 교체됐다.


연말연시에 접어들어 팀스피릿 재개 전망이 커지는데도 상호 사찰의 동력이 생기기는커녕 북측의 '외세 결탁' 비난 수위는 더욱 거칠어졌다.


1993년 1월 핵통제공동위 위원장 접촉에서 최 위원장은 요지부동으로 상호 사찰 수용을 촉구하는 공 위원장을 향해 "자기 정신인지 모르겠다", "음력설 3일 동안 놀더니 자기 정신이 다 나간 거 아니냐"고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마지막 위원장 접촉까지 총 22차례 핵통제공동위가 열렸으나 상호 사찰 규정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핵 협의는 결렬로 귀결됐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도 큰 후퇴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990년대 초 남북간 핵문제 협의 과정 공개한 통일부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통일부가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서른 두 차례의 남북간 핵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최초로 남북 당사자간 북한 핵문제를 협의했던 시기의 회담 문서로,「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 대표간 접촉 및 회담 과정이 담겨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해당 문서를 펼쳐 보이는 모습. 2026.6.30 dwise@yna.co.kr


결렬의 원인으로는 핵개발 의혹을 해소하려는 진정성 없이 시간끌기로 일관한 북측의 태도와 함께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 남측의 협상력 한계도 함께 거론된다.


남북회담 문서 공개 심의위원인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측은 자신들과 관련한 핵문제는 남측이 아닌 IAEA와 협의하려 했고, 남측과는 주한미군의 기존 핵시설 사찰만 강하게 요구했다"며, 남북 간 불일치가 커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남측은 북측의 군사기지도 포함해 불시 사찰에 응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북측이 수용하기 쉽지 않은 강압적 사찰 조건"이라며, "유인책 없이 압박성 레버리지만 사용한 것은 우리 협상력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당시는 대선에 이은 정부 교체 시기여서 '레임덕' 상태의 노태우 대통령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고 정 전 본부장은 전했다.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북한자료센터·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경기·강원·충청·호남권 통일플러스센터,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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