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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도 못하냐", "머리카락도 없는데"…상호 비방·외모 비하도
북, '비핵화 공동선언' 후 사찰 방식·기한 문제 삼으며 지연전략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이은정 기자 = 1991~1992년 남북이 핵 협상을 벌인 회의장에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인신공격이 난무할 정도로 치열한 기싸움이 오간 기록이 남북회담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30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회담 문서 사료집에는 남북 대표단이 만나 악수를 하고 앉자마자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돌변하기 일쑤였던 당시 회담장 분위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가만있으라"며 상대측 발언을 중단하고 끼어들기는 다반사였고, '깡패', '강도', '놈' 등의 거친 표현도 쏟아져 여러 차례 회담장이 발칵 뒤집혔다.
◇ 북, 핵사찰 압박에 연합훈련 트집…"손금 보듯 안다" 정보력 과시
1991년 '핵 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의 핵심 쟁점은 핵 시설에 대한 사찰이었다.
남측은 상호 시범사찰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릿'을 핵 공격을 가상한 훈련으로 규정하고 이를 먼저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그해 12월 28일 열린 2차 대표접촉에서 북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자신들의 정보력을 적극 과시했다.
북측 대표였던 최우진 외교부(현 외무성) 순회대사는 "남쪽에 미국의 핵무기가 군산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며 미군기지도 사찰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측 공동대표였던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은 남측의 팀스피릿 훈련 참관 제안을 거절하며 "어떤 장비와 비행기가 동원되는지 앉은 자리에서 다 손금 보듯 알 수가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또 "가서 보는 것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시야에서 볼 수 있지만, 앉아서는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며 "훈련 때마다 참가하는 항공모함 있잖나. 핵탄 50발 내지 100발 싣는다"고 주장했다.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여곡절 끝에 남북은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이듬해부터 진행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북측은 사찰 방식과 기한을 문제 삼으며 지연 전략을 구사했다.
남측이 사찰 기한을 최대한 앞당기려고 하자 회담장에서는 유치한 '산수 논쟁'까지 벌어졌다.
1992년 3월 4일 4차 대표접촉에서 남측 임동원 대표가 핵통제 공동위원회 1차 정기회의 후 1개월 내 사찰 규정을 마련하자는 남측의 안과 사찰 규정을 채택 후 20일 이내 사찰하자는 북측의 안을 반영해 '50일 내'라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에 북측 최우진 대표가 "30일을 50일로 불렸다는 소리냐"고 불만을 표시하자, 남측 공동대표로 나선 임 대표는 "그 수학을 잘 못했나? 학교 다닐 때"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최 대표는 역시 지지 않고 "임 대표가 초보적으로 간단한 산수도 공부 못했다"며 맞받아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놈', '깡패' 고성 난무…"머리카락도 없는데" 인신공격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을 위한 제6차 대표접촉(1992년 3월 10일) 당시에도 양측이 비속어를 쓰는 등 서로를 자극하면서 회담장이 파행 직전까지 몰렸다.
당시 남측 임동원 대표는 북측에 핵시설 사찰의 시효를 두자고 요구하면서 북측 대표였던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를 향해 책상을 치면서 "핵 문제 토의하는 사람이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놈이 어디…(있느냐)"라고 쏴붙였다.
핵시설 사찰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남측 주장에 대해 "강도적인 주장을 누구한테도 하지 말라", "강도의 논리요, 깡패의 논리요. 자꾸 그런다"는 식의 궤변으로 남측 대표단을 자극하자 더욱 강경한 발언으로 응수한 것이다.
그러자 북측 대표 역시 책상을 치며 "야! 어디 책상을 쳐!"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한동안 장내에 소란이 벌어졌다.
북측 김영철 대표는 임 대표의 '놈' 발언을 거론하며 "대화 역사에 없는 일"이라며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어 한마디 큰소리쳤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남측 임 대표가 '놈' 발언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는데 격정이 되어 서로 소리를 지르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놈이라고 그랬다면 사과를 드린다"고 수습에 나서야 했다.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가 출범한 뒤, 북측 안을 수용하라며 흥분 상태로 열변을 토하는 최우진 북측 대표에게 공로명 남측 대표는 '우황청심원'을 꺼내며 진정시키기도 했다.
당시 공 대표가 "혈압이 너무나 올라갈 것 같아서 내 걱정이 됐는데"라며 우황청심원을 꺼내 들자, 북측 최 대표는 "이제 보니까 공 위원장이 약을 잡숫는 것 같구만. 혈압이 올라가서"라고 비아냥대는 듯한 뉘앙스로 말한다.
상대의 외모를 겨냥한 노골적인 조롱도 있었다.
그해 6월 30일 열린 6차 회의에서 탈모가 있었던 공로명 대표를 향해 북측 최우진 대표는 "공 위원장 머리카락 없는데, 괜히 모자 안 쓰고 나갔다가 햇볕에 쬐게 되면 건강에 나쁘다"고 한 것이다.
약 5개월 뒤인 11월 18일 제10차 회의 때는 공 대표가 최 대표에게 "걱정이 많은 양반은 머리가 있고, 왜 나같이 걱정 안 하는 사람은 머리가 없지"라며 씁쓸하게 말하는 장면도 있다.
이에 최 대표는 "머리에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대신에 머리가 좋다는 말이 있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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