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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일간 사선 넘나든 6·25 최초 유격대 '백골병단' 75주년 추모

입력 2026-06-05 16: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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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3군단, 인제 백골병단 전적비서 전사·실종된 361명 넋 기려




육군 3군단, 백골병단 75주년 추모행사

[육군 3군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육군 3군단은 5일 6·25 전쟁 당시 최초의 유격부대인 백골병단 전사자와 실종자의 넋을 기리는 '제75주년 백골병단 추모행사'를 했다.


백골병단은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후퇴하던 1951년 1·4 후퇴 당시 후방지역 적에 대한 정보 수집 필요성을 절감한 육군본부에 의해 1951년 1월 창설된 한국군 최초 유격대다.


정식 명칭은 '육군본부 직할 결사대'였다.


군은 당시 대구 육군보충대에서 대기하던 젊은이들과 의용 경찰, 학생 등 7천여명 중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학력, 신체 상태 등을 고려해 800여명을 대상으로 3주간 특수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3개 연대를 창설했으나 같은 해 2월 통합한 뒤 '백골이 되어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겠다'는 각오와 함께 병력 규모를 과장하기 위해 '백골병단'(단장 채명신 중령)으로 명명했다.


최종적으로 백골병단 용사 647명이 생명을 건 유격 작전에 참전했다.


1951년 2월부터 적 지역이었던 강원도 오대산과 설악산 일대에 침투해 3월 말까지 56일 동안 험준한 산악지형과 혹한의 날씨, 변변한 보급과 장비 지원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약 320㎞를 이동하며 적 후방지역에서 교란작전과 첩보 수집 임무를 펼쳤다.




육군 3군단, 백골병단 75주년 추모행사

[육군 3군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때 획득한 주요 첩보를 활용해 적 사령부 주둔지에 공중폭격을 유도해 괴멸시켰고, 이후 아군의 북진 작전 계획 수립 때도 중요한 정보로 쓰였다.


백골병단은 남한 내 빨치산 총사령관을 비롯해 적 고위 군관 등 489명을 생포·사살하고, 총기 204점을 노획하는 등 수많은 공로를 세웠다.


이에 3군단은 1990년 11월 9일 백골병단 전적비를 건립하고, 임무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호국영령 361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윤인재 인제군 부군수를 비롯해 송세용 백골병단 전우회 부회장과 유가족, 명예 회원, 지역 보훈 단체장 등 180여명이 참석했다.


1961년부터 다양한 선양 활동을 이어온 백골전우회는 군단 특공연대 모범 부사관 2명에게 '충용 특공용사상'을 수여하고, 용대초등학교 모범 장학생 4명에게 백골 장학금을 수여했다.


3군단장 조우제 소장은 "백골병단 영웅들이 보여준 사명감과 용기는 오늘날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군이 본받아야 할 호국정신의 표상"이라며 "결사의 군인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보장하는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완비하자"고 강조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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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5 1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