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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18)차별 맞서 '채식주의자' 전향…잠비아 국부 카운다

입력 2026-05-02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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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보이콧으로 일깨운 독립 정신…식민주의와 싸운 '아프리카의 간디'


독립 비판적인 대처 총리와 볼룸 댄스도…27년 독재 비판에도 평화적 정권교체




케네스 카운다 잠비아 초대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우리는 건국의 아버지 케네스 카운다를 기립니다. '하나의 잠비아,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우리를 계속 인도해야 합니다. 모두를 위해 더 강하고 더 번영된 잠비아를 건설하면서 통합과 평화, 그리고 봉사를 선택하도록 합시다."


하카인데 히칠레마 현 잠비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케네스 카운다의 날'을 맞아 엑스(X·옛 트위터)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잠비아는 2021년 6월 카운다 초대 대통령이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운 그와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자 에드가 룽구 당시 대통령이 그의 생일인 4월 28일을 '케네스 카운다의 날'로 지정, 공휴일로 선포했다.


카운다 초대 대통령은 1889년부터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잠비아의 1964년 독립을 이끈 지도자다.


독립 직후 대통령에 취임해 27년간 장기 집권했기에 일당 독재, 경제 정책 실패 등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는 잠비아의 독립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의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했고 처음 다당제를 도입해 치른 1991년 대선에서 패배 후 평화적 정권교체에 기여했다. 오늘날까지 잠비아의 국부(國父)이자 '독립의 아이콘'으로 존경받고 있다.


잠비아의 관문인 수도 루사카 국제공항은 2011년 마이클 사타 대통령 때 케네스 카운다 국제공항으로 개명됐다.




카운다 장례식 때 조문하는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2021년 7월 2일 잠비아 루사카에서 열린 케네스 카운다 잠비아 초대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하나의 잠비아, 하나의 국가'라고 쓰인 벽 아래에서 방명록에 글을 쓰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1924년 4월 28일 잠비아 북부 벽지에서 목사이자 교사인 부친과 역시 교사였던 모친의 여덟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성장해 자신도 교사로 잠비아와 탕카니카(현 탄자니아)에서 일한 그는 1949년 잠비아로 돌아왔다.


당시 식민정부인 북로디지아에서 백인 의원의 보좌관 등으로 일하다 반식민 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이후 잠비아 독립의 구심점이 된 통일민족독립당(UNIP)을 창당했다.


그는 1950년대 흑인을 차별한 정육점들에 대한 보이콧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나라가 흑인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이룰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독립 후에도 채식주의자로 남았다.


그는 통치 기간 휴머니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윤리, 전통 아프리카 가치, 사회주의 원리 등을 혼합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한 바 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연설 도중 문장 전체를 되풀이 함으로써 핵심 사상을 강조했다.


볼룸 댄스를 즐긴 그는 1979년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루사카에서 열린 코먼웰스(영연방)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독립운동에 호의적이지 않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 춤을 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8월 6일 잠비아 루사카에서 열린 코먼웰스 정상회의에서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 춤을 추는 케네스 카운다 잠비아 초대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베티 여사와 슬하에 아홉 자녀를 뒀다.


이 가운데 다섯째 아들을 1986년 에이즈로 잃으면서 이후 에이즈 퇴치 운동에도 헌신했다.


그는 27년 집권 기간 잠비아를 남부 아프리카에서 백인 소수 지배와 싸우는 반식민주의 단체들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간디'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가 대외적으로 게릴라 단체 후원을 한 나라는 앙골라, 모잠비크,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등이다.


그는 1975년 모잠비크 독립 협상에 이어 1980년 짐바브웨·1990년 나미비아 독립 협상 등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불법화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30년 동안 루사카에 망명 둥지를 틀도록 해줬다. ANC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1990년 감옥에서 풀려나자 외국 정상 가운데 맨 먼저 카운다를 찾아갔다.


남아공 정부는 그에게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정의와 아파르트헤이트(흑인 분리·차별 정책)에 대한 투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최고 수준의 외국인 공로훈장 중 하나인 'O.R. 탐보 동지 훈장'을 수여했다.


또한 남아공 국가유산위원회(NHC)는 평화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려 2007년 제2회 우분투(Ubuntu)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남아공 흑인 원주민의 전통 가치관을 기리는 이 상의 제1회 수상자는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다.


NHC의 손와빌레 만코시와 위원장은 당시 "카운다는 선거에서 자신이 패배할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당제 선거요구를 수용했다. 그는 부정선거를 실시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팬데믹에도 카운다 장례식에 온 아프리카 지도자들

2021년 7월 2일 잠비아 루사카에서 열린 케네스 카운다 잠비아 초대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아프리카 지도자들. 에드가 룽구 당시 잠비아 대통령 외에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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