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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이 됐네"…20년 만에 '새집' 얻은 아흔살 참전용사

입력 2025-07-05 07: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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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출신 보훈가족 사연에 지역 기부·봉사 단체 팔 걷어붙여





지난 3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집에 새 싱크대 설치하는 바르게살기운동 회원들의 모습 [촬영 홍준석]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신혼집이 됐네. 완전 새집이 됐어."


지난 3일 오전 10시께 서울 송파구 거여2동에 있는 한 슬레이트 지붕 집. 10평 남짓한 집 안은 이른 시간부터 북적였다.


인부들이 벽지와 색을 맞춘 하얀 옷장과 서랍장을 옮겼다. 싱크대를 설치하고 화장실 문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에게 황병준(90)씨와 한순자(87)씨 내외는 휴지를 건넸다. 숨 좀 돌리고 일하라며 포도 주스도 내줬다.


빠듯한 생활에 부부는 20년 동안 이곳에 살며 한 번도 집을 고치지 못했다고 한다.


황씨는 15살이던 1950년 한국전쟁에 소년병으로 동원됐다. 참전 중 청력을 잃다시피 했다.


오른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왼쪽 귀가 가까스로 소리를 전해준다. 평생 판매업과 운송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슬하에 1남 3녀를 뒀는데, 막내딸이 사기 사건에 연루돼 지금 사는 집도 팔고 전세로 살게 됐다. 한 푼씩 모은 돈으로 장만한 유일한 재산이 그렇게 없어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병원비도 문제다.


황씨는 2019년 위암 수술을 했고 고혈압과 당뇨 등을 앓고 있다. 한씨는 심장질환이 있고 관절이 안 좋아 잘 걷지 못한다.


참전용사인 황씨는 보훈병원에서 저렴하게 진료받을 수 있지만, 한씨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보건소 출장 진료에 의지해왔다.


기초연금, 참전 유공자 명예 수당, 노인 직접 일자리 수당을 합해도 부부가 한 달 받는 돈은 100만원 정도다.




송파구, '호국 보훈의 달 국가 유공자 방문 의료서비스' 실시

(서울=연합뉴스)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호국 보훈의 달 국가 유공자 방문 의료서비스'를 실시한 17일 서울 송파구 국가유공자 황병준 씨의 집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2025.6.17 [서울 송파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그런데 출장 진료를 온 간호사들이 부부의 사연을 구청에 알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지난달 17일 '호국보훈의 달 국가유공자 방문 의료서비스' 차원에서 황씨 집을 찾았고 사정을 살핀 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여러 단체와 접촉했다.


그 결과 국민운동단체 '바르게살기운동' 거여2동협의회 김순규 회장과 거여1동협의회 복경제 회장이 황씨를 돕기로 했다.


이들은 1일 공사를 시작하기 전 청소부터 해야 했다.


찬장과 옷장은 기름때가 껴 있었고 누레진 벽지 뒤편에는 곰팡이와 얼룩이 꼈다. 벽과 가구 사이 틈에는 먼짓덩어리가 가득했다.


도배와 장판부터 싱크대와 가구까지 1천만원 넘게 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재능기부로 인건비를 아꼈다. 원자재비 350만원가량은 단체 활동비와 구청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집 벽지 뜯어내고 청소하는 바르게살기운동 회원들의 모습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사가 끝날 무렵 경기 고양시에서 달려온 장녀 황순애(63)씨는 몰라보게 깨끗해진 집을 보고 "살림하는 맛이 나겠다"며 기뻐했고, 한씨는 눈물을 흘리며 순애씨 손을 잡았다.


순애씨는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지만 여의찮았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로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며 "특히 도와주러 오신 분들 표정이 너무 밝아서 좋았다. 저도 기부에 관심 갖고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순규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며 보훈을 강조한 점을 언급하면서 참전용사 대우가 나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13년째 지역 소상공인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 '기부천사'도 이끄는 김 회장은 장학금 지원, 화재 피해 복구, 독거노인 돌봄 사업 등을 해왔다.


김 회장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13명, 이 중 2명은 대학교까지 진학했다. 김 회장은 대학 첫 학기 등록금도 지원했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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