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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승리 세리머니 'L을 가져가', 유튜버 타고 운동회까지
연예인·운동선수도 동참…전문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역효과"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L을 가져가'를 따라 하는 학생들(왼쪽)과 한국환경공단 캐릭터 '푸루'의 'L을 가져가' 영상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애를 가져가라고?"
"4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최근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이 집에서 이마에 손가락으로 L자를 대고 "L을 가져가"라며 춤추는 걸 보고 어리둥절했다.
박씨는 "지난번 '6-7'(식스 세븐)처럼 또 이상한 걸 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식스 세븐'은 지난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뚜렷한 뜻이 없는 게 특징이다.
지금도 아이가 한 말의 정확한 뜻을 모른다는 그는 "만화 '데스노트'의 엘과 관련이 있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초등학생들이 운동회, 체육대회 등에서 노래에 맞춰 무아지경으로 'L을 가져가'를 외치는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epa06890741 Antoine Griezmann celebrates (R) after scoring the 2-1 by penalty during the FIFA World Cup 2018 final between France and Croatia in Moscow, Russia, 15 July 2018.
지난 2018년 프랑스 축구대표팀 공격수 앙투안 그리에즈만이 월드컵 크로아티아와 결승전에서 'L을 가져가' 동작을 세리머니로 선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졌으면 인정해"…게임 속 '약 올리기 춤'이 아이들 놀이로
'L을 가져가'는 영어 표현 'Take the L'을 그대로 옮긴 말이다. 영미권에서는 승리(Win)를 W, 패배(Loss)를 L로 줄여 쓰는데, 'Take the L'은 '패배를 받아들여라', 즉 '졌으면 인정해'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2018년 게임 '포트나이트'의 이모트(감정을 표현하는 동작)로 널리 알려졌다. 엄지와 검지로 만든 L자를 이마에 대고 다리를 번갈아 옆으로 차는 동작으로, 게임 속에서 상대를 놀릴 때 주로 쓰였다.
같은 해 프랑스 축구대표팀 공격수 앙투안 그리에즈만이 러시아 월드컵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 등에서 골을 넣은 뒤 이 춤을 세리머니로 선보이며 전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국내 초등학생 사이 유행은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비롯됐다.
로블록스 속 게임에 비슷한 동작이 들어갔고, 유튜버 '권루트'가 이 동작을 따라 하며 "L을 가져가"를 외치는 영상을 올리면서 지난 8월께부터 짧은 영상으로 퍼져 나갔다.
인스타그램에는 가을 운동회와 체육대회에서 노래가 나오면 학생들이 일제히 "L을 가져가"를 외치며 춤추는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유행은 어느덧 성인들에게도 번지고 있다. 배우 박한별은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이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고,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김단비는 지난달 27일 미디어데이에서 다섯 글자 각오로 'L을 가져가'를 내걸었다.
한국환경공단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캐릭터 '푸루'가 이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며 "여러분은 외출할 때 다회용기 가져가~(기)"라는 재치 있는 문구를 달기도 했다.

배우 박한별이 'L을 가져가' 챌린지를 하는 모습 [박한별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애를 가져가"로 듣고 혼내기도…부모들은 어리둥절
신나게 유행어를 외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박씨는 "집에서 기분이 좋으면 시도 때도 없이 하는데,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애가 오늘 배워 온 걸 보니 전국 초딩이 다 아는 거다"라며 뒤늦은 국내 유행에 놀라워하는 반응도 나왔다.
부모가 'L'을 아이를 뜻하는 '애'나 '뇌'로 잘못 알아듣고 나쁜 말이라며 혼냈다는 후일담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관련 게시물에는 "뇌를 가져가라는 줄 알고 어디서 그런 노래를 배웠냐고 뭐라고 했다", "애를 가져가라고 계속 그래서 엄청 혼냈다"는 댓글이 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A(45) 씨는 "처음엔 '야르' 같은 유행어가 워낙 많아 그러려니 했다"며 "뜻을 알고 나서도 나쁜 뜻이 아니라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쇼츠, 스마트폰, 학교 친구들을 통해 접한 것 같다"며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우리은행 김단비가 27일 서울 강남구 호텔리베라에서 열린 KB스타뱅킹 2026-2027 여자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2026.10.27 yatoya@yna.co.kr
◇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역효과…뜻 물어보며 접근해야"
아이들의 이 같은 행동에 부모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는 어느 세대에나 있는 유행어 같은 것이라며 낯선 표현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혼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노래와 율동으로 결속을 다지고 '너희가 졌어'라며 이겼다는 걸 강조하는 재미 때문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이런 유행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말이네, 무슨 뜻이야, 어디서 왔어, 어떨 때 쓰는 거야'라고 물어보며 파악하되, 친구가 불편해하면 '너에겐 놀이지만 상대에겐 공격이 될 수 있다'고 알려 줄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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