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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브랜드 처가방 대표 겸 민단 도쿄본부 단장, '한국의 맛' 이어 '역사' 알리기
고구려 후손 마을 2만3천㎡ 부지에 한국문화 테마파크 조성도 추진
"내년 4월 착공, 2028년 개관 목표…김치로 잇는 1천300년 인연"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오영석 처가방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처가방 서울사무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 10. 20.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일본에 김치박물관을 만든 데 이어 남은 인생은 고구려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일본 한식 브랜드 '처가방'(妻家房.사이카보) 대표인 오영석(73)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도쿄본부 단장은 최근 인천에서 열린 세계한인대회 참석차 방한, 지난 10일 연합뉴스와 만나 일본에 고구려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서울 사무소에는 고구려 시대 토기와 골동품들이 보물처럼 전시돼 있었다.
오 단장은 일본에서 수집한 고구려 관련 유물이 50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정명당 백정양 대표 등의 도움으로 유물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박물관은 내년 4월 착공해 2028년 개관하는 것이 목표다. 향후 기증을 받아 소장품을 확충할 계획이다.
박물관이 들어설 곳은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다.
일본 고대사 사료인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따르면 고구려 마지막 임금 보장왕의 아들인 약광(若光)은 고구려 사절단으로 666년 일본에 왔다가 2년 후 고구려가 멸망하자 일본에 남았다.
이후 716년 간토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 1천799명을 모아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오늘날의 히다카시 일대에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마군'(高麗郡)을 설치하고 약광은 초대 군장에 임명됐다.
지명은 메이지(明治·1868년∼1912년) 행정 개편에 따라 히다카로 바뀌었다.
당시 일본 전체 인구 300만 명 가운데 1천799명이 정착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약광왕자를 기리는 고마신사(高麗神社)가 이곳에 있다. 2017년 9월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한·일 간 화해 메시지로 처음 신사를 참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탤런트 최수종을 비롯해 고구려역사기념관건립 범국민추진위원회 회원과 한류팬 천여 명이 2008년 '한일 우정 페스티벌 2008' 첫날 행사로 고마신사(高麗神社)를 찾아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겼다. 2026.10.20 gounworld@yna.co.kr
이곳에는 2008년 광개토대왕비도 세워졌다. 오 단장은 자신의 선조도 고려 군기감을 지낸 28대 조상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과의 인연은 김치에서 시작됐다. 오 단장은 2016년 당시 신주쿠(新宿)한국상인연합회장 자격으로 고마군 건립 1천300주년을 맞아 고구려마을에서 김치축제를 열었다.
고구려인들의 옷·음식·생활상을 보여주고 김치 문화를 알리자는 것이 고구려박물관 건립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농지를 매입하면서 한국 테마파크 구상이 구체화했다. 히다카시는 지난해 약 2만3천500㎡ 부지에 대한 농지전용을 허가했다.
이곳에는 한국 음식·뷰티·헬스 공간과 찜질방, 막걸리 박물관과 공장, 김치 공장, 떡 카페, 한국 전통차, 기와집 형태의 글램핑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구려 후손들의 옷과 음식, 생활상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함께 짓는다.
김치로 일본에 한국문화를 알려온 경험이 이제 고구려의 역사를 알리는 사업으로 확장된 셈이다.

오영석(앞줄 왼쪽서 5번째)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장이 2019년 12월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신주쿠 구청 측에 오륜기 색깔의 종이학 2천20마리와 성금 30만엔을 전달했다.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제공]
오 단장이 처음부터 김치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그의 일본 생활은 패션업계에서 시작됐다.
패션 디자이너로 명동에 의상실을 운영하던 그는 1983년 31살 늦깎이 유학길에 올라 일본 패션 전문학원인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게이오 백화점의 숙녀복 담당자로 패션 유통업에 종사하다가 한식업에 뛰어든 것은 아내 유향희 씨 때문이었다.
1993년 아들 돌잔치에 초대받아 유 씨의 한식 요리솜씨에 반한 게이오 백화점 관계자들의 권유로 김치와 젓갈을 파는 반찬가게를 차린 것이 지금의 '사이카보' 1호점이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게이오 등 유명 백화점 식품 코너에 입점했고 내친김에 한국 가정식 요리를 선보인 한식당도 오픈했다.

[처가방 제공]
김치 맛뿐만 아니라 문화도 전하려고 본점에 김치박물관도 세웠다. 현재 도쿄·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등 주요 도시에 한식당 22곳과 식료품점 13곳을 운영하며 연 4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환점은 1996년 이세탄백화점에서 나왔다. 납품한 김치가 썩었다는 항의가 들어오자, 오 단장은 본점 김치박물관에서 김치 교실을 운영했다.
그는 "김치는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알렸고, "김치를 상품이 아닌 문화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김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이 곧 한국문화를 알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고기 같은 구이 요리가 중심이던 일본에 지짐이와 파전, 잡채, 갈비찜, 비빔밥 같은 한국 가정요리를 소개한 것도 성과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청담동 등지에 매장 3곳을 운영하며 일본 가정요리를 알리는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김치가 일본에서 나를 성공시켜 줬으니, 나는 한국에서 일식을 알리겠다"는 '은혜 갚기' 철학으로 설명했다.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신주쿠지역의 한인들이 2020년 신주쿠 구청에 마스크 2만장을 기부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서 2번째가 오영석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명예회장, 첫번째는 유향희 처가방 총요리장. 2026.10.20. photo@yna.co.kr
하지만 한국 음식을 일본에 알리는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0년 45개까지 늘었던 점포는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관련 발언 등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혐한 시위가 확산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오 단장은 일본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식당 방문을 꺼렸다고 회고했다. 매출은 30% 줄었고, 점포 15개가 문을 닫았으며, 손실은 무려 20억 엔(약 200억 원)에 이르렀다.
2012년 경영 위기 때는 보유 건물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직원 한 명 해고하지 않은 채 고비를 넘겼다. 당시 함께했던 직원들은 지금도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 단장은 자신의 사업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한인 상권 전체의 생존에도 힘을 쏟았다.
오 단장은 한일 관계가 나빠진 시기에 "우리가 뭉쳐야 산다"며 도쿄 신주쿠·신오쿠보 일대 상인들을 모아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를 꾸렸다.
신주쿠와 신오쿠보를 잇는 K팝 홍보를 위해 당시 재외동포재단(현 재외동포청)에서 셔틀버스를 제공해 무료로 운행하고, 한식재단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메뉴 품질과 명칭을 정비했다. 그 결과 업체 수는 200여 곳에서 750곳으로 늘었다.
성공 비결을 묻자 오 단장은 "한 우물을 파며 한국 음식과 문화를 알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답했다.
김치로 일본에 한국의 맛을 알린 그는 이제 고구려박물관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하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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