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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탐험] 세종에서 만난 맛, 그리고 사람의 향기…世宗五食

입력 2026-09-24 0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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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세종시는 행정도시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단정한 건축물과 잘 어울리는 공원 등 볼거리도 즐비한 도시다. 여기에다 주변의 풍성한 식재료 덕분에 음식 문화도 발달한 곳이다.





세종식물원의 석양 [사진/성연재 기자]



◇ 세련된 맛 전해주는 신도심의 미식


세종에는 전주 비빔밥이나 안동 헛제삿밥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이 뚜렷이 없다. 그러나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음식점과 전통주, 조치원전통시장 등을 관광 콘텐츠와 묶은 새로운 미식 여행 코스가 생겨나고 있다. 세종시가 나서서 지역 미식 자원을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기존 미식 체험 프로그램 '세종의 식탁'을 정규화한 '세종오식(五食)'을 선보였다. 세종오식은 조선 왕실에서 초조반·조수라·낮것상·석수라·야찬 등 하루 다섯 차례 음식을 즐겼던 식문화에서 착안했다. '세종대왕처럼 다섯 끼를 즐기는 미식 여행'을 콘셉트로 지역 음식점과 카페, 디저트를 하나의 여행 코스로 묶어 세종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이번 미식 여행에서 음식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세종시 가름로에 있는 '빠스타스 by 파인드파인'이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가정식을 기반으로 세종의 제철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로컬 레스토랑이다. 세종무화과샐러드와 감바스 알 아히요, 조치원복숭아 프로슈토 피자, 비스큐 로제 파스타, 전복 감태 리소토가 차례차례 나왔다.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 틀에 지역 식재료와 한국적인 취향을 결합한 메뉴들이다.


특히 조치원 복숭아 프로슈토 피자가 눈에 띈다. 100년 넘는 재배 역사를 가진 조치원 복숭아를 피자에 올려 익힌 복숭아의 단맛과 프로슈토의 짠맛을 조합했다. 세종무화과샐러드 역시 지역 제철 과일을 이탈리아식 메뉴에 적용한 사례다. 이 식당은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이탈리아 가정식을 바탕으로 세종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새로운 메뉴로 풀어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빠스타스 by 파인드파인'의 메뉴 [사진/성연재 기자]


식사에는 세종 백경증류소의 술도 곁들였다. 처음에는 전통주 몇 가지를 맛보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지만, 첫 잔부터 예상이 빗나갔다.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었는데도 입안에서는 은은한 과실 향이 번졌다. 향만 놓고 보면 잘 만든 화이트 와인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우리 술이라고 하면 으레 생각하게 되는 단맛이나 묵직함과는 결이 달랐다.


정승안 백경증류소 양조사의 설명을 들으며 잔을 바꿔 가니 차이가 더욱 느껴졌다. 같은 15도 술이라도 어떤 누룩을 쓰고 어떻게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향과 질감, 여운이 전혀 달라졌다. 이날 맛본 술은 모두 7종으로, 하나의 원료에서 다양한 풍미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백경증류소의 전통주 [사진/성연재 기자]


백경이 지향하는 술은 '음식과 함께 마시는 술'이다. 술 자체의 단맛이나 향을 앞세워 음식의 맛을 덮기보다는, 한 접시가 끝나고 다음 요리로 넘어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입맛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빠스타스의 이탈리안 메뉴와 우리 술의 조합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밖에 산장가든의 석갈비 또한 주목받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양념한 돼지갈비를 미리 구운 뒤 뜨거운 판에 올려 내는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종에서는 맛깔스러운 음식과 더불어 40층 이상의 고층 카페에서 다양한 음료와 함께 멋진 도심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세종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공간이다.





조치원 세종전통시장의 오영희 할머니의 전통 수정과 [사진/성연재 기자]


◇ 조치원의 미식, 그리고 사람의 향기


신도심의 미식을 맛봤다면 조치원으로 향해볼 필요가 있다. 조치원의 전통 오일장에서 색다른 음식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날을 맞은 조치원전통시장은 채소와 과일, 생선, 반찬과 각종 먹거리를 파는 좌판이 시장 통로를 채웠다.


시장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온누리상품권 3만원씩을 주고 직접 음식을 구입하는 '우리가 다 함께 차리는 수라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왕천파닭과 만두, 순대, 전, 떡갈비, 두부, 호떡, 묵, 식혜 등을 각자 사 와 인근 카페 화양연화에서 한 상에 펼쳐놓았다. 완성된 코스를 제공받는 식사와 달리 직접 시장을 돌아다니며 조치원의 먹거리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시장에 이어 조치원 구도심 골목도 둘러봤다. 이곳에는 오래된 주택과 상가를 허물지 않고 손봐 카페와 공방으로 활용하는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박지원 대표가 운영하는 도예공방 '스틸마스프링'도 그중 하나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했지만, 내부는 밝고 깔끔하게 정비했다.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거나 이미 만들어진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조치원 세종전통시장 [사진/성연재 기자]


관광객을 위한 일회성 체험도 있지만 실제로는 도예를 취미로 배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박 대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활동도 하고 있어 도예 교육을 취미와 체험을 넘어 소통과 치유의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스틸마스프링은 조치원 골목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 '화양연화'와도 연결돼 있다. 화양연화가 지역의 사람과 골목을 연결한다면 스틸마스프링의 도예 체험은 그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스틸마스프링은 주민에게는 동네 사랑방 같은 취미 공간으로, 여행객에게는 작은 체험 공간으로, 지역에는 미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는 주민 박판권 씨의 남다른 노력이 있다. 평생 건설업에 몸담았던 그는 몇 해 전부터 느닷없이 조치원읍 거리를 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청소하는 사람도 아닌데 혼자 무슨 짓이냐"는 핀잔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마다 묵묵히 골목을 쓸고 닦았고, 그렇게 동네를 돌보는 틈틈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스틸마스프링의 도자기들 [사진/성연재 기자]


계기는 뜻밖에도 어머니의 한마디였다. 환갑을 넘긴 어느 날, 어머니가 그에게 "이제는 꽃처럼 한번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박씨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꽃처럼 산다는 것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곳을 조금 더 깨끗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청소를 하고 시를 쓴다. 그래서였을까. 조치원 구도심은 세월의 흔적이 짙은데도 이상하리만큼 말끔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 사이에도 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거리에서는 음식 냄새가 구수하게 흘러나왔지만, 이날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음식에서 풍기는 향보다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향기였다.





매일 주변을 청소하며 보살피는 박판권 씨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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