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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제2차 오일 쇼크'로 세계가 휘청였던 1970년대 말 각종 매체에선 '석유 고갈론'을 설파했다. 석유 고갈에 대비해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신문 공익광고를 봤던 기억도 난다. 학교에서도 석유가 30년 뒤면 바닥나 인류가 큰 위기를 맞을 테니 미리 준비하자고 교육했던 게 생각난다. 미술 시간엔 이를 주제로 포스터를 그렸고, 국어 시간엔 표어를 만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석유 고갈론은 석유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1950년대에 석유 생산 하향 예측치를 담아 발표한 '허버트 곡선'을 계기로 태동했다. 원래 위기론은 객관적 신중론보다 힘이 세고 잘 먹힌다. 석유 고갈론은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거치며 영향력을 한층 키웠다. 이후 유럽 싱크탱크 '로마클럽'이 1972년 발표한 '성장의 한계' 보고서에서 석유가 30~40년 뒤 고갈될 거라 주장하면서 석유 고갈론은 정설의 지위를 굳혀갔다.
석유 고갈론은 세기말 정서와 맞물려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지만, 실제 새 밀레니엄이 왔을 때 석유는 바닥나지 않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저 이론이 얼마나 허황한 오류였는지 잘 안다. 석유 총매장량은 알 수 없으며, 가채 매장량(채굴할 수 있는 추정 매장량)은 셰일 혁명과 같은 기술 발달과 함께 늘고 있다. 이제 학계 정설은 석유를 다 쓰기 전에 인류의 시대가 먼저 끝날 수 있다는 개념에 가깝다. 인류가 수백 년 넘게 쓸 화석연료 가채 매장량이 확인됐고, 대체재 개발과 효율화 등 에너지 혁명으로 석유 수요도 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기후 예측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적지 않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2006년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통해 기후 변화 위기론을 대중적 관심 영역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극단적 연구를 인용해 북극의 여름철 해빙(海氷)이 7년 내 소멸할 거라고 말해 충격을 줬다. 이를 계기로 기후 위기설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2014년에 북극 얼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7년간 해빙 면적이 늘어났다. 훗날 앨 고어는 검증 안 된 주장으로 대중을 자극했다고 비판받았다. 그는 현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투자 금융사와 기후변화 환경단체를 운영하며 큰 부를 쌓았다.
석유 고갈론과 북극 해빙 단기 소멸설은 세계인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여파로 지구촌 경제 산업 구조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인류사엔 이런 일들이 적지 않다.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갔던, 중세 유럽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저서가 금서로 지정되고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대에 오르는 등 실제 탄압까지 받았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어이없는 촌극이다.

[연합뉴스 TV 제공]
왜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졌을까. 눈 한 개 달린 사람들 마을에 가면 눈 두 개인 자가 비정상이 되는 게 인간 본성이어서다. 과학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집단 사고', '동조 효과' 등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원래 비합리적 존재란 뜻이다. 인류의 유전자에는 긍정보단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에 본능적으로 더 주목하는 '부정 편향' 속성도 있다. 그래서 대중은 공포 마케팅에 기반한 '위기론', '괴담' 등에 더 쉽게 끌린다.
주류 이론인 기후변화 위기설을 부정하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기후변화론 역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현 지위를 얻었다.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 상승이 발견됐고 그동안 북극 얼음 면적이 평균적으로 조금씩 줄어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아무리 유력해도 의심하는 게 과학이 발전해온 주요 원동력이다. 그 태도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천동설과 석유 고갈론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기후 위기론이 '절대 정설은 없고 유력 가설만 있다'는 과학의 기본 원칙조차 뛰어넘어 절대 권력처럼 교조화하려는 위험한 징후를 보인다는 점이다. 과학적으로 기후 변화에는 수많은 미지의 요인이 복합 작용하는데, 기후 위기론이 절대 성역 안에서 새 이론을 배척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과학에는 교조주의와 정치가 개입돼선 안 된다. 어떤 주제이든, 어느 쪽이 맞든 열린 공간과 동등한 조건에서 건강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과학 이론이 성경처럼 숭배되고 가설이 교리로 받아들여지면 인류는 갈릴레이를 재판하던 중세 성당 속으로 퇴보할지도 모른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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