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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지켜볼 때 상당한 쾌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평소 질투하고 시기하던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은 소위 잘나가는 유명 인사의 이혼에 큰 관심을 갖는다. 완벽할 것만 같던 이도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불행을 겪는다고 하니 묘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언론이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의 이혼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도 이런 대중의 기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세기의 이혼'(Divorce of the Century)이란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세기의 이혼은 단순히 저명인사의 이혼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유명인 이혼 중에서도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사례를 상징적으로 일컫는다. 권력 구조에 영향을 주거나, 정치적 파장이 크거나, 재산 분할 액수가 천문학적이란 말이 나올 만큼 큰 경우 등이 포함된다.

(런던 EPA=연합뉴스) 지난 1981년 2월 24일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는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모습.
가장 대표적인 세기의 이혼으로 중세 영국 왕 헨리 8세와 스페인 공주 출신 왕비 캐서린의 이혼이 꼽힌다. 이 이혼으로 영국의 국교가 바뀌고 영국사는 물론 유럽 중세 역사가 요동쳤다. 원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수였지만,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동맹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동생과 재혼했다. 하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헨리 8세는 왕위 계승을 위해 교황에게 "형수와 결혼은 성경 교리에 위배되므로 혼인 무효를 선언해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결국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새로운 국교를 선포했다. 영국 성공회의 탄생이었다.
헨리 8세 사례에는 못 미치나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빈의 이혼도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동화 같은 '세기의 로맨스'로 시작해 비극적 드라마 같은 파국으로 마무리된 관계였다. 화려한 시작은 왕세자의 불륜, 세자빈의 우울증과 섭식장애 등 속칭 막장 드라마 같은 과정을 거쳐 세기의 이혼으로 끝났다. 그런데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이혼 이듬해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비판받던 영국 왕실은 결국 신비주의를 포기하고 대중 친화적이고 개방적으로 변신해야 했다.
재산 분할 액수로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계 거두인 제프 베이조스 부부와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이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주 부부의 이혼은 순수 재산 분할액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초기 동업자였던 부인 매켄지에게 나눠준 주식이 당시 가치로 무려 380억 달러에 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인 게이츠는 부인 멜린다에게 분할한 재산 액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부부 총자산 1천300억 달러 중에서 상당한 액수를 양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스타인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부부의 이혼, 조니 뎁과 앰버 허드 부부의 이혼 당시에도 '세기의 이혼'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쓰였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두 건의 '세기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관심을 끈다. 하나는 과거 재벌과 권력의 만남이 파국을 맞게 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이혼 소송이다.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 존재를 인정하며 이혼 의사를 밝히고 2017년 이혼 소송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송사가 진행 중이다. 2024년 2심에선 최 회장이 1조3천808억원을 노 관장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 상고심에서 가액 산정 등에 대한 일부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얼마 전 파기환송심에선 분할 액수가 9천440억원으로 하향 조정됐고, 최 회장 측은 일단 7천억원만 수용하겠다고 한 상태다.
최 회장 부부 이혼 소송은 천문학적 분할 액수이자 역대 최고액 사례로 회자했으나, 그 기록이 깨질 게 유력해졌다. 최근 글로벌 게임 기업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창업자 부부의 이혼 소송 1심 선고에서 약 2조5천517억원가량(보유 재산 35%)을 부인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권 창업자가 지분 전량을 보유한 스마일게이트의 비상장 주식 가치가 7조1천억원 넘게 평가된 데 따른 결정이다. 향후 장기간 송사가 이어질 듯하지만, 적어도 최 회장 부부 분할액은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 회장 부부 결별을 주목했던 대중은 이제 "세기의 이혼은 따로 있었네"라며 권 창업자 부부의 재산 분할로 화제를 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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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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