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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중동 증류주 '아락'이 원조…몽골 침략 때 한반도 유입
조선조까지 50도 독주, 이성계 장남 죽고 세조 피부병 키워
장학엽 '진로' 1924년 출시, 박정희 희석식 '국민주' 도입
90년대까진 25도가 표준, 올들어 와인급 15도가 대세 돼
K열풍 타고 세계인의 soju로, "물타기 대신 개성 경쟁을"

[조옥화 안동소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한국인의 술' 하면 소주를 떠올리지만, 그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 닿는다. 8~9세기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은 증류 기술을 이용해 발효주에서 알코올을 분리·농축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렇게 만든 중동의 증류주가 아랍어로 '땀'을 뜻하는 '아락(Arak)'이다.
13세기 중동을 정복하며 증류 기술을 손에 넣은 몽골은 고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술 제조법을 한반도에 들여왔다. 몽골군 주둔지였던 개성에서 '아락주'가, 일본 원정의 병참 기지였던 안동에서 '안동소주'가 싹을 틔운 배경이다. 몽골의 원정길이 소주의 전파로였던 셈이다.
조선조까지 소주는 40~50도를 웃돌던 독주였다. 선조의 어의였던 허준은 광해군 때 편찬한 동의보감에서 "소주는 원나라(몽골) 때 생겨난 술로, 맛이 지극히 맵고 독해 많이 마시면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소주 때문에 왕실이 화를 입은 기록도 전한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이성계의 맏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는 소주를 많이 마시다 병을 얻어 죽었다.

영화 <관상>에서 세조 역할을 한 이정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양대군 세조 역시 소주로 건강을 잃은 왕의 핏줄이다. 심복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하사했을 정도로 소주를 각별히 아꼈던 세조는, 지독한 피부병으로 신음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 소주는 몸에 열을 일으켜 피부 염증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피부 질환에는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죽기 직전까지 독주를 가까이했으니 51세 나이에 세상을 뜬 데는 술이 명을 재촉한 탓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소주는 일제강점기 들어 귀족의 술에서 민중의 술로 내려앉았다. 1924년 평남 용강에서 장학엽이 진천양조상회를 세우고 출시한 35도짜리 '진로'가 그 출발점이었다. 이런 소주를 '국민주'로 만든 것은 박정희였다. 그는 극심한 식량난을 타개하겠다며 1965년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쌀을 이용한 술 제조를 전면 금지하는 한편, 고구마 등에서 추출한 주정에 물을 타는 지금의 희석식 소주를 대량 보급했다.
박정희 정부는 난립한 소주 업체도 통폐합해 '1도 1사' 체제를 구축했다. 서울·경기의 진로를 비롯해 부산의 대선, 경북 금복주, 경남 무학, 전북 보배, 전남 보해, 충북 삼학(후에 백학), 충남 선양, 강원 경월이 각 지역을 장악하며 독점적 향토 주류 시대를 열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진로가 처음 출시한 23도짜리 소주 참이슬. 이후 소주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참이슬 모델로 화제가 됐던 이영애 [연합뉴스 자료사진]
102년 전 35도에서 출발한 대중 소주의 도수가 끝없이 내려가고 있다. 1973년 진로가 내놓은 25도 소주가 오랫동안 표준으로 통했지만, 1998년 23도짜리 '참이슬'이 돌풍을 일으키며 1위 자리를 굳힌 뒤 21도, 19도, 16도로 떨어졌다. 지난 6월 참이슬이 15.7도로 내려갔고, 9월부터는 '처음처럼'도 뒤를 따랐다. 25도짜리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마시던 중장년층의 입에는 소주인지 와인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13세기 초 몽골의 침략과 함께 우리 땅에 들어온 소주가 K 열풍을 타고 세계인이 즐기는 'Soju'가 됐다. 물을 더 타 도수를 낮추고 감미료를 바꾸는 안이한 경쟁에서 벗어나, 고유의 원료와 향으로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 소주를 빚어내야 한다. 소주의 진정한 세계화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맛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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