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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범의 AI 혁신 스토리] 부처 벽 넘는 AI 정책의 필수 조건

입력 2026-08-26 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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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크를 넘어선 국가대표 AI 선발

[연합 AI 플랫폼 생성 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 듣기 어려운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였다. 필자도 여러 칼럼으로 인공지능(AI) 정책에 대한 생각을 밝혀왔지만, 정책 책임자와 마주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짧아 할 말을 다 꺼내지는 못했으나 반가운 대목은 분명했다.



◇ 지켜야 할 것은 규칙이 아니라 지향점


그중 하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이른바 '독파모'를 보는 관점이었다.


독파모 출범 당시 최대 제약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25년 추경으로 1조4천600억원을 투입해 H200과 B200 등 1만3천여 장을 확보했고, 그해 10월 엔비디아는 한국에 최신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2조805억원 규모의 AI 컴퓨팅자원 사업과 2조5천억원짜리 국가 AI 컴퓨팅센터가 이어진다.


기준과 지원 방식을 다시 점검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지켜야 할 것은 처음 만든 규칙이 아니라 정책의 지향점이다. 세부 목표와 지원 기준은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배 부총리의 고민이 반가웠던 이유다.


실제로 독파모는 계속 형태를 바꿔 왔다. 지난 18일 발표된 2차 단계평가에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LG AI연구원 3개 팀이 다음 단계에 올랐고 모티프테크놀로지스는 탈락했다. 최상위 글로벌 모델과의 AAII(글로벌 AI 평가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지능·성능 평가지수) 격차는 1차 평가 때 19점에서 16점으로 좁혀졌고, 국내 최고 모델은 47점으로 오픈웨이트 부문 세계 6위에 올랐다. 주목할 대목은 발표문에 덧붙은 한 줄이다. 주요국이 AI 모델을 국가안보 전략자산으로 보는 흐름에 맞춰, 기존 방식을 넘어서는 지원 체계를 관계부처와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픽]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3개팀 최종 진출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한국을 대표할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개발 경쟁이 LG AI연구원과 SK텔레콤, 업스테이지의 3파전으로 압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독파모 2차 단계평가 브리핑을 열고 모티프테크놀로지스가 최하위를 기록해 2차 평가에서 탈락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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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주권과 데이터 주권


필자가 독파모를 응원해온 이유는 '국산 모델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AI가 산업과 행정, 교육과 의료의 기반 인프라가 되는 상황에서 핵심 기술을 해외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기술적 선택권도 함께 넘어간다. 가격과 이용 조건은 물론, 언제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공개할지가 그 기업과 소속 국가의 정책에 좌우된다.


올여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이를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6월 9일 최상위 모델 클로드 폐이불 5와 미토스 5를 공개했다. 사흘 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근거로 수출통제 지시를 내렸고, 회사는 전 세계 접근을 차단했다.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즉각 막으라는 지시였고, 대상에는 앤트로픽 소속 외국인 직원까지 포함됐다. 통제는 18일 만에 풀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상무부 서한에 앤트로픽이 보안 위험을 사전에 감지·해결하고 향후 출시 표준 마련에 협력하기로 한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오픈AI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6월 26일 GPT-5.6 시리즈를 공개하면서 미국 정부와 모델 계획과 성능을 미리 공유하고, 정부가 파악한 신뢰 파트너 대상 제한 공개로 시작했다. 실제 접근이 허용된 곳은 약 20곳이었고, 오픈AI는 이런 승인 절차가 장기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좋은 해외 모델을 쓰는 것과 핵심 기술을 그 모델에 의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어를 잘하는 모델과 우리 제도·문화·산업 현장을 이해하는 모델도 같지 않다. 제조와 의료, 금융과 공공행정에 쌓이는 데이터가 우리 모델의 성능을 높이고, 그 모델이 다시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에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은 세계 최고의 AI를 활용해 인공지능 전환(AX)과 생산성에 집중하고, 컴퓨팅·데이터·인재가 대규모로 필요하며 회수 시점도 불확실한 모델 개발은 국가가 떠받치는 두 트랙이 맞다.


이 장기전에서 GPU만큼 중요한 것이 데이터다.


중국이 개인정보를 전혀 보호하지 않아 AI가 발전했다는 설명은 지나친 단순화다. 중국에도 개인정보보호법(PIPL)이 있고 국가기관도 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법정 직무 수행에 필요한 경우 동의 없이 처리할 근거가 있고, 공공안전 분야에 쌓인 영상 데이터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마틴 베라하(Martin Beraja) MIT 교수 등이 2023년 계간경제학회지(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실은 논문(AI-Tocracy)에 따르면, 얼굴인식 조달 계약을 따낸 중국 기업들이 계약 이후 2년간 약 49% 많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내놨다. 공안 수요가 만든 기술이 상업 시장 성과로도 이어진 것이다.


중국식을 따라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보호와 활용을 양자택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사실상 제도는 이미 움직였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20일 AI 개발을 위한 개인정보 활용 특례를 담은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모든 개발에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공익적 필요성과 강화된 안전조치를 전제로 개인정보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법은 통과됐지만 실제 기준은 남아 있다. 시행령과 심의 기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열린 문이 될 수도, 형식만 남은 조항이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과기정통부와 개인정보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둘 다 보호와 활용의 필요성을 인정해도 역할과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견이 아니라, 이견이 생겼을 때 누가 결론을 내리느냐다.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기다리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다. 후발주자에게 그 시간은 곧 경쟁력 손실이다.




배경훈 부총리, 독자 AI모델 관련 보고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독자 AI모델 개발 도전 의의 및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2026.8.25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superdoo82@yna.co.kr


◇ 위임 없는 조정은 회의에 그친다


그래서 과학기술부총리라는 자리가 중요하다.


2004년 신설됐다 폐지된 이 자리는 2025년 10월 17년 만에 부활했다. 정부조직법 제19조는 과기정통부 장관이 과학기술과 인공지능 정책에 관해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하도록 규정한다. 부총리 직속 과학기술·인공지능정책협력관과 관계 장관회의도 함께 마련됐다.


법이 부여한 것은 부처 울타리를 넘는 범정부 조정이다. 그렇다면 조정이 회의를 열어 의견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논의를 충분히 했다면 보호 원칙을 지키면서 무엇을 어떤 조건에서 허용할지, 허용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방향을 정하고 정책 결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이 신사업 TF 책임자에게 권한을 주는 이유도 같다. 기존 조직의 이해관계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면 TF를 만든 의미가 없다.


물론 활용의 문을 넓히면 그 기회를 받은 쪽의 책임도 무거워져야 한다. 허용 목적을 벗어난 사용이나 권한 남용은 엄하게 물어야 한다. 책임의 원칙이 분명할수록 더 과감하게 길을 열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실제 경쟁할 기반을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독자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과 인재를 갖추고 기업의 AX와 연결해 생태계 수준을 끌어올리는 긴 싸움이다.


목표는 지키되 현실에 맞춰 규칙을 바꾸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과기정통부 혼자 넘기 어려운 벽 앞에서는 부총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부총리 체제는 조정을 넘어 결론까지 만들라고 세운 자리다. 그 기대에 답할 수 있도록 권한과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한국특수정보인증원 최고 AI 책임자(CAIO)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전 ㈜컴팩 CIO ▲ 전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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