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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홈플러스와 트레이더 조

입력 2026-07-23 0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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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식료품 체인 성공사례, 홈플러스 회생 모델로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마트 체인 홈플러스가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번복으로 재기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홈플러스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인력 체계와 영업 방식을 포함한 기업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생존을 위한 재탄생의 몸부림이다. 그런데 홈플러스의 비장한 각오와 계획에서 시선을 끈 대목이 있다. 정상화를 위한 '역할 모형'으로 미국 식료품 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를 콕 집어 거명한 것이다.




트레이더 조 매장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트레이더 조는 어떤 기업이기에 궁지에 몰린 회사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됐을까. 캘리포니아 군소 편의점 체인을 기반으로 196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질 좋은 식료품을 합리적 가격에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성공담을 써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비자들이 이커머스 온라인 쇼핑으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며 업계에서 자기만의 위치를 확보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질 좋은 식빵과 신선한 계란 한 줄 정도를 가볍게 사 들고 오기에 딱 좋은 '동네 슈퍼'.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트레이더 조의 이미지다.


여기엔 사실 정교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같은 '유통 공룡'과 싸움에서 살아남고자 트레이더 조는 맞불 작전 대신 틈새를 파고드는 특성화를 택했다. 우선 규모 대신 밀도에 집중했다. 기존 대형 마트는 '한 곳에서 모든 물건을 싸게 산다'는 이미지로 유혹한다. 대형 운동장 크기 매장에 수만 개 상품을 진열하고 대량 구매를 유도해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다. 트레이더 조는 반대로 갔다. 매장이 너무 크고 상품 종류가 많으면 필요한 물건을 찾기 힘든 데다 선택의 피로감을 느끼는 고객들이 많을 거라 봤다. 그래서 매장 크기를 경쟁사들의 10~30% 수준으로 줄이고 상품 종류도 선호도 높은 소수 정예 위주로 압축했다.


오직 트레이더 조에서만 살 수 있는 가성비 PB(자체상표) 상품 위주로 매장을 대부분 채운 것도 성공 요인이다.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색다른 레시피를 지닌 제조업체들을 찾아내 히트작을 양산했다. 미국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한국산 냉동 김밥은 트레이더 조의 대표 PB 상품 중 하나다. 캔버스 재질 쇼핑백인 '미니 토트백'은 나오는 대로 동났다. 이 평범한 시장 가방은 한국에서도 인기여서 몇 배 웃돈이 붙은 채 다시 팔리는 일도 있었다. 고품질 와인과 치즈 등을 직거래로 수입해 파격가에 팔면서 강력한 팬덤을 확보하는 미끼 전략도 썼다. 채소 같은 신선 식품은 가까운 동네 농장에서 공급받는 원칙도 지킨다.




트레이더 조 미니 토트백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우리 동네 마트'라는 이미지 덕도 크다. 트레이더 조는 "우린 냉정한 대기업이 아니라 정겨운 이웃 상점"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매장에 들어서면 딱딱한 제복 대신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웃으며 반긴다. 상품명과 가격 등은 인쇄물 대신 작은 표지판에 직접 펜으로 쓰고 그린다. 기존업체들이 인건비 축소를 위해 늘려온 무인 계산대도 없다. 사람이 직접 물건을 담아주며 계산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직원은 계산대에서 불편한 점을 직접 묻고 괜찮은 신제품을 추천하며 '사람 냄새'를 풍긴다. 매체 광고, 할인 행사, 회원제, 쿠폰이 없는 것도 기존 대형 체인과 차별화된 전략이다.


표적 고객도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경쟁사들이 모든 대중을 고객층으로 보는 것과 구별된다. 트레이더 조는 교양 수준이 높고 취향이 분명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만은 않은 고학력 중산층을 타깃으로 삼는다. 그래서 트레이더 조는 주로 대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에 매장을 운영한다. 특히 코스트코처럼 양 많은 벌크 상품만 파는 곳이 부담스러운 독신 젊은 층 사이에서 트레이더 조의 인기는 상한가다. 트레이더 조는 이제 43개 주에 걸쳐 매장을 운영하며 '알디'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유통 체인이 됐다.


아마존 같은 이커머스 업체의 약진에 미국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메이시스, 시어스 등 백화점 체인이 몰락하고 어중간한 마트 브랜드와 약국 체인들도 쇠퇴하는 가운데 확실한 전략과 개성을 보유한 업체만 살아남는 모양새다. 코스트코처럼 초저가 대량 판매 전략을 쓰거나, 트레이더 조와 같이 특화된 고객층에 집중하거나, 한국의 다이소에 비견되는 달러 제너럴처럼 초저가 소매를 전문으로 하는 세 부류만 경쟁력을 보인다.




홈플러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몰이 급성장한 환경에 적응 못 한 채 도태한 홈플러스가 다짐대로 '한국판 트레이더 조'로 거듭날 수 있을까. 홈플러스는 일단 복층 구조로 된 점포들을 모두 단층화하고 매장당 총면적도 1천평 정도로 축소하기로 했다.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도 식료품과 회전율 높은 생필품 위주로 압축하고 PB 상품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트레이더 조의 영업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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