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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가 간판 3분의 1은 외국어…유학생 증가·외국풍 상권 인기 영향
한글 표기가 원칙·등록 상표는 외국어 표시 허용…관광특구 등에선 기준 완화도
간판 크기 5㎡ 미만· 3층 이하 설치는 허가·신고 대상 제외…제재 방법 없어

2025년 8월 서울 명동의 거리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외국어 못하면 밥도 못 먹겠네요.", "다른 대학가도 저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학가 거리를 찍은 사진 한 장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건물에 걸린 간판 대부분이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돼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지면서다.
이곳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두고 최근 대학가에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분석과 함께 이런 표기 방식이 합법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간판에서 외래어만 단독으로 사용하면 무조건 불법이다', '영어는 안되지만, 한자는 우리나라가 한자 문화권이니 허용된다', '한글이 80% 이상이면 된다' 등 여러 주장이 나온다.
이에 관련 법을 토대로 정확한 간판 표기법 기준을 알아봤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간판에 외국어 표기 기준은…"등록 상표는 그대로 표시 가능"
간판의 문자표기 방법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옥외광고물법) 제12조 2항에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때 특별한 사유란 '상표법에 의거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한글 또는 외국 문자가 포함된 내용)를 그대로 표시하는 경우 등'을 뜻한다.
풀어서 설명하면 기본적으로는 간판의 문자는 한글로 표시하거나 한글로도 나란히 적어야 하지만 외국어로만 써도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는 매장 전면에 'STARBUCKS'나 'A TWOSOME PLACE'처럼 영문 표기만 내건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상표를 영문으로도 등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특정 조건을 충족한다면 현재 사용하는 국어가 아닌, 옛 한글로 써도 허용된다.
법제처는 2016년 옛 한글 사용과 관련한 법령 해석 결과 자료를 내고 "광고물에 국어의 현용 자모(현재 사용하는 자음과 모음) 외에 옛 한글의 자모를 사용하는 것이 아름다운 경관과 미풍양속을 보호하고, 공중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며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관련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도지사 등의 결정에 따라 특정 지역에선 표시 기준이 완화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상업지역 및 경관지구나 지구단위 계획구역, 관광진흥법에 따른 관광지·관광단지·관광특구 등에서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이때도 공원자연보존지구 및 공원자연 환경지구, 생태·경관보전지역 및 자연유보지역, 지정문화유산과 그 보호구역 등은 제외되는 등 조건이 붙는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명동관광특구 등은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대형 전광판 설치도 가능하다.
SNS에서 외국어 간판으로 주목받은 동대문구 대학가는 이런 완화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동대문구 안에는 간판 관련 법적 규정이 완화된 곳이 없다"고 말했다.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규정상 허점도 외국어 간판 범람 배경…허가·신고 대상 아니면 사실상 제재 없어
간판 신고 및 허가 규정상의 허점도 길거리에 외국어 간판이 범람하는 배경 중 하나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벽면이용 간판'(문자·도형 등을 벽면에 가로 또는 세로로 표시하는 광고물)의 경우 한 변의 길이가 10m 이상이거나 건물 4층 이상 층의 벽면에 설치하는 타사 광고, 전기를 이용하는 광고물은 허가받아 설치해야 한다.
또 면적이 5㎡ 이상이거나 건물의 4층 이상 층에 표시하면 신고해야 한다.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건물 3층 이하에 설치되거나 5㎡ 미만이라면 허가나 신고 절차가 필요 없어 사실상 아무런 제재 없이 외국어로 적힌 간판을 내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허점을 노려 허가·신고 대상에서 벗어난 간판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간판 정비 사업 등으로 건물 벽면에 내거는 간판의 크기가 작아지는 추세에다 임대료 상승으로 점포 규모가 줄면서 간판을 걸 수 있는 면적도 줄고 있어서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인허가 없이 설치하는 간판이 많다"고 말했다.
허가가 필요한 간판은 허가 과정에서 간판 표시법을 준수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신고 대상 간판은 말 그대로 신고만 하면 돼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는 점도 외국어 간판이 늘어나는 이유로 꼽힌다.
서울시 관계자는 "허가 대상은 문자표기법을 같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신고 대상은 신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설치 전에 제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글 표기 원칙을 어긴 간판을 시정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서울시와 동대문구청 관계자 모두 "인허가 대상 간판이라면 1년에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 시내 옥외광고물 점검 및 시정 명령은 자치구청장에게 있다. 또 허가나 신고 대상이 아닌, 건물 3층 이하 벽면에 설치한 5㎡ 미만 크기의 벽면이용 간판은 행정조치도 불가하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신고 배제 대상에 대해선 이행 강제권이 없다"고 말했다.
각 자치구가 관내 모든 간판을 전수조사하기에는 인력 구조 및 예산상의 한계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서울 서대문구 신촌연세로에 외국어로 표기된 상점 간판들이 상당수 보인다. 2022.10.9
ondol@yna.co.kr
◇ 소비문화 변화·외국인 증가 속 늘어나는 외국어 간판…"대학가 간판 3분의 1은 외국어"
규정상 허점 등과 함께 소비문화 변화, 국내 방문 및 체류 외국인 증가 등으로 외국어로만 된 간판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한글문화연대가 서울 시내 12개 대학권에서 16개 대학을 중심으로 상권 간판의 문자 표기 실태를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2025년 서울시 옥외광고물 한글 표기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간판 7천129개 중 외국어 간판은 29.3%(2천86개)로 3분의 1에 육박했다.
순 한글 간판 비중은 50.2%(3천576개), 외국어와 한글을 병기한 간판은 20.4%(1천457개)였다.
대학가에 외국어 간판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외국풍 상권이 인기를 끌고, 관광이나 유학 등의 이유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 홍대입구 부근에 사는 김모(33)씨는 "홍대입구 부근에서도 외국어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일본이나 중국 음식이 인기이기도 하고, 외국에 온 듯한 감성을 좋아하다 보니 일부 매장은 간판뿐만 아니라 메뉴판까지 모두 외국어로 적혀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사는 최모(49) 씨는 "요즘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이 많아진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대학가 앞에 가보면 과거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외국인 학생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의 '2015~2025년 국내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 수'를 보면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5만3천434명으로 2015년 9만1천332명에 비해 177.4% 증가했다.
외국어 사용 자체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글문화연대가 2020년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천58명을 대상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외국어 사용 증감 여부를 조사한 결과, 29.1%가 '매우 늘었음', 28.0%가 '다소 늘었음'이라고 답해 늘었다는 반응이 57.1%를 차지했다.

[국립국제교육원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외국어 간판 범람 속 소외되는 노년층…"뭘 파는지도 모르겠어"
이런 외국어 간판으로 소외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노인들이 큰 불편을 호소한다. 한 70대 노인은 "외국어로만 적혀 있는 가게에선 뭘 파는지 들어가 보지 않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김모(48)씨는 "서울 용산구의 한 유명 식당 거리를 갔는데 제2외국어로 적힌 곳들은 식당 이름조차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반 국민이 외국어 표현 3천500개를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하는 단어는 30.8%(1천80개)에 불과했다.
특히 70세 이상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하는 단어는 242개(6.9%)뿐이었다.

[수원특례시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어 간판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모범적인 한글 간판을 뽑아 상을 주는 등 '당근'을 내걸고 한글 간판 설치를 유도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는 지난해 9월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관내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업소당 최대 2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벌였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외국어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거나 한글 표기를 덧붙이는 업소를 금전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 좋은 간판 공모전'을 열어 선정된 이들에게 상장과 상금을 주고, 선정된 모범 사례를 홍보에 활용함으로써 한글 표기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외국어로만 표기한 간판은 일부 계층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 정체성 유지나 통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사람들은 외국어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는데 일부에게는 이런 간판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 해당 지역에 외국인이 많아 외국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면 한글 병기 방법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후변화처럼 당장은 느끼지 못해도 이런 외국어 간판이 계속 늘어나면 언젠가는 사회 통합이나 정체성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원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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