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토큰까지 수출세?…AI 국가주의, 우방도 착취할까 [이광빈의 플랫폼S]

입력 2026-07-02 06:39:01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AI모델·반도체 이어 토큰 접근권도 무기화 가능성…"통상·안보 카드 여지"


'AI 부의 공유' 놓고 갈등도…정치적 의제화에 국제질서 영향

김성식 "국가 차원의 협력 플랫폼 필요"…유럽도 발등의 불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난 6월 11일 뉴욕에서 열린 '그록 AI'에 반대하는 시위에 등장한 일론 머스크 풍자 모형 [AF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인공지능(AI)의 경제 무기화가 국제 질서를 포성 없이 뒤흔들고 있다.


AI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를 넘어 이제는 토큰(AI의 데이터 사용 단위) 접근권까지 '전략·안보 자원'으로 작용할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미국의 최신 AI 모델을 사용할 수 있더라도 미국 시민보다 더 비싼 금액을 내거나 사용량과 속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다.


AI 생태계 구축 경쟁 속에서 최소한의 공급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가들은 자칫 '소작농'과 같은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AI 패권국가에 목줄을 내어준 채 휘둘릴 수 있는 셈이다.


AI 국가주의 공세 속에서 방어만 하면서 홀로 생존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곤 독자적으로 대규모 AI 생태계를 주도할 만한 인프라와 자본을 갖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 기존 AI 생태계에 필수적인 공급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전략적으로 억제하고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선 치명적인 공격 무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로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 미국의 AI 수출 통제, 반도체 넘어 모델까지


미국 정부의 AI 통제는 기존 중국을 상대로 한 반도체 수출 규제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앤트로픽의 첨단 AI 모델 '미토스 5'와 '페이불 5' 등에 대해 외국인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우방국을 예외로 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배포되는 AI 모델에 수출 통제를 적용한 첫 사례다. 최근 미국 정부가 18일 만에 수출 통제를 거둬들였지만, 미국 AI 기업들의 인프라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냉혹한 현실을 확인했다.


오픈AI가 최근 내놓은 차세대 모델 'GPT 5.6'의 최초 접근 허용 대상에서도 해외 고객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전했다.


AI 인프라와 관련해 사실상 '수출세'까지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H200' 등 해외에서 제작돼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재수출되는 AI 반도체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중국에 AI 반도체가 넘어가지 않도록 옥죄는 조치다.


◇ AI 모델의 해외 토큰까지 가산금?…사실상 '수출세'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층 더 급진적인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AI 패권국가가 외국을 상대로 AI 모델의 토큰 사용까지 통제해 비용을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유럽연합(EU)이 해외 AI 기업에 디지털서비스세(DST)를 부과하려는 시도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미국이 AI 모델 등 인프라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간다면, EU가 미국 기업에 세금을 물릴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수출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AI 모델이 대체 불가능해지는 순간 미국은 사실상 '슈퍼 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우방국도 착취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엔비디아가 독점한 GPU 생태계의 경우 이런 식의 전조 증상이 이미 나왔다. 해외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부들까지 GPU 물량을 받아내기 위해 엔비디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AI 인프라의 물리적 한계가 가시화되는 점도 심상치 않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일부 지역의 AI 데이터센터 공실률은 1% 이하로 떨어졌다. 공급이 극도로 빠듯한 상황에서 토큰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주요 기업에선 AI 사용량을 장려하는 추세가 생겼으나, 토큰 비용이 급증하자 다시 제한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제는 AI 클라우드 기업이 아예 고객사의 용량을 제한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최근 메타가 요청한 인프라 용량을 전부 할당해주지 못했다.


특히 기업 단위에서도 이제 토큰을 비용 청구의 단위로 쓰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디 인포메이션 보도에 따르면 앤트로픽이 아마존에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을 기존 컴퓨팅 시간 단위에서 사용 토큰 수 단위로 변경했다.





[AI 생성 이미지/앤트로픽 클로드]


◇ 토큰 접근권, 통제의 상징 되나…"국가 간 협상 변수"


더구나 토큰은 AI 모델 사용료를 계산하는 단순한 과금 단위에 그치지 않는다. 연산 자원과 데이터센터, 전력까지 아우르는 AI 인프라가 실제 서비스와 업무 현장에서 소비되는 최종 단위에 가깝다. 곧 토큰을 실제 확보한다는 것은 AI 인프라에 대한 접근권을 얻는다는 의미다.


한운희 TRS인사이트 대표는 "토큰 접근권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프런티어 AI 풀스택'에 대한 접근의 안정성과 질을 가르는 전략 조건"이라며 "이 구조가 확대되면 토큰 접근권은 국가 단위의 통상·안보 협상 카드로 편입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고성능 모델 접근권, 우선 처리권, 사용량 한도(쿼터), 특정 국가 내 전용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배치 여부가 미국 AI 기업과 해외 기업·정부 간 계약에서 중요한 협상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대표는 "어떤 국가는 미국산 클라우드·AI 서비스에 대한 디지털서비스세나 데이터 현지화 요건을 완화하는 대신, 미국 프런티어 AI 기업으로부터 고성능 모델 접근권, 높은 사용량 한도, 낮은 지연시간, 해당 국가 내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지원을 확보하려 할 수 있다"며 "토큰 접근권 역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협상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내다봤다.





지지자들 앞에서 제스처를 취하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 AI가 만든 '양극화', 정치적 의제 부상


전 세계적으로 AI를 둘러싼 생태계에 경제력이 집중하는 현상은 이런 추세를 더욱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I로의 쏠림과 이로 인한 부의 양극화는 경제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부의 공유 문제를 놓고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AI로 인해 소외되고 위축된 영역이 많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는 이미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AI 기업의 지분을 정부가 직접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는 AI로 인한 이익을 분배하는 데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민주당 측에선 AI 기업의 주식을 세금으로 받아 국부펀드를 만들어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AI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해 세수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정치권이 AI 수익에 개입할 개연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비중이 날로 커지는 한국의 경제 구조도 AI발 부의 쏠림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삼성전자의 성과급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의 소재로 비화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AI 분야와 관련된 초과 이익과 세수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주요 의제로 자리 잡게 된 셈이다.





[그래픽]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계획 규모


◇ 한국 대응은…"제조업 풀스택을 레버리지로"


AI 인프라의 무기화 추세에 국내에서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LLM 개발 등의 기존 '소버린 AI' 담론을 넘어서는 입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AX 도전과 대응, 혁신 성장 포용을 위한 국가전략'을 주제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국민경제자문회의가 공동 개최한 포럼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표된 피지컬 AI 및 첨단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입체적인 대응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포럼에서 "글로벌 빅테크가 구축하는 AI 락인(Lock-in) 전략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종속이 경제적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김 부의장은 "우리의 강한 제조 역량과 양질의 데이터, 디바이스 경쟁력을 레버리지로 삼아 AI 인프라의 공동 설계자로 도약해야 한다"며 "AI 풀스택 전략을 구축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협력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금융위원회 합동회의서 발언하는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자체 역량 vs 현실적 한계…유럽의 딜레마


유럽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영국은 기술 부문의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LLM의 개발 여부를 놓고 논쟁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토스 및 파블로 규제 조치는 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정부 일각에선 독자적인 AI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반면 애초 미국과 경쟁이 어려운 영역인 만큼 다른 AI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마저도 부족한 AI 인프라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전력망 인프라가 잘 갖춰진 프랑스는 영국보다 처지가 나은 편이다. 프랑스는 최근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을 제치고 소프트뱅크로부터 수백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구축 투자를 유치했다. 프랑스는 '미스트랄'이라는 AI 모델도 구축해 놓았다.


이런 가운데 유럽이 AI 모델로 미국과 정면승부를 하기보다는 AI 생태계에서 기존에 가진 강점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게 'AI 무기화' 시대에 협상력을 높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칼럼에서 ASML, 인피니온, 자이스 등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S #AI_무기화 #토큰 #AI_국가주의


lkbin@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