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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배달·쇼핑 등 '욕구' 달래는 '가짜 사이트'
실제 결제·배송 없는 '가짜 소비 체험' 제공
"상품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는 행동 자체가 대리만족"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 배달 앱을 켜서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치킨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콜라도 하나 추가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받기 위해 '거북이 배달' 대신 '토끼 배달'을 선택해 결제까지 마쳤다. 지도 앱 위로 라이더의 위치가 움직인다. 결제한 지 8분 뒤 음식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어보면 배달된 음식은 없다. 애초에 진짜 배달 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에 당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돈을 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짜 소비 체험'을 한 것이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배달, 쇼핑, 콘서트 예매 등 일상의 다양한 소비 욕구를 가상 공간에서 해소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가짜 사이트'가 화제다.
원하는 소비 행위를 실제처럼 똑같이 체험하지만, 비용이 청구되거나 물건을 받아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가짜 체험'만으로도 실제 소비와 비슷한 대리 만족을 느낀다며 호응한다.

[사이트 '음식만***' 이용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배달 중독 치료"…"돈도 아끼고 다이어트도"
대표적으로 가짜 배달 앱 시뮬레이션 사이트 '음식만***'에 접속하면 '배달 중독 치료 데모(시뮬레이션) 앱'이라는 소개 문구가 뜬다.
사용자는 실제 배달 앱처럼 메뉴를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가상)결제 후에는 배달 라이더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
사이트에는 치킨, 라멘, 파스타, 떡볶이, 마라탕 등 15개 음식점의 40개 이상 메뉴가 올라와 있다. 맛 선택, 사이즈 변경, 토핑 추가 등 옵션 선택도 가능하다.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이 2만1천900원, 김치찌개가 9천500원, 로제 떡볶이가 7천900원 선이다.
로제 떡볶이에 치즈를 추가하고 1만667원을 가상으로 결제하자 6분 만에 배달 완료 알림이 떴다. 이어 "580㎉를 아꼈다"는 메시지가 표시됐다. 실제로는 음식을 받지 않은 '덕'에 그만큼의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사이트는 엑스 이용자 '말희'의 '배달 중독' 경험에서 탄생했다.
그는 지난 3월 엑스에 "배달 중독이 심해서 가짜 배민/쿠팡 만들었습니다. 메뉴 고르고, 결제하고, 배달 추적까지 다 되는데 음식만 안 옵니다"라며 해당 사이트를 소개했는데 조회수 500만회를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너무 참신한 아이디어다", "가짜 배민 신박하다. 장바구니만 채우고 끄는 사람으로서 이건 혁명이다", "일종의 제로 배달 같은 건가" 등의 댓글로 환호했다.
대학원생 심모(26) 씨는 19일 "장난삼아 접속했는데 진짜 주문하는 기분이 들어 욕구가 충족됐다"며 "돈도 절약하고 다이어트도 하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그는 "밤만 되면 습관처럼 배달 앱을 켜는 바람에 한 달에 배달비로만 30만원 가까이 쓸 정도였다"며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도파민 충족을 위해 음식을 시켰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직장인 이모(25) 씨도 "앱에서 마지막에 칼로리를 아꼈다고 뜨는 게 은근히 뿌듯했다"며 "배달 욕구가 생길 때 이 가짜 앱을 유용하게 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날에도 야근하고 돌아오면 습관처럼 디저트를 배달시켰고, 막상 시키면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사이트 '사자**' 이용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가짜 '탕진' 재미…"충동구매 참는 효과"
쇼핑 충동구매 욕구를 달래는 가상 쇼핑몰도 있다.
지난 4월 엑스 이용자 '쁏'이 제작한 '사자**'에서는 실제 온라인 쇼핑몰처럼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가상)결제를 하며, 상품 리뷰도 남길 수 있다.
다만 판매하는 상품들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가전제품 카테고리에는 무려 1천만 원짜리 '시공간 도약 기기(타임머신)'가 올라와 있다.
"불량품 왔음. 윙윙거리는 소리만 나고 조선시대 타임슬립으로 설정했는데 지금 공룡시대 와서 브라키오사우루스한테 교통사고 당함",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사는 걸 막으려고 샀는데 경고창이 뜨더라. 그래서 그냥 매일 뒤통수만 때리고 튄다. 강추" 등 유쾌한 후기가 줄을 잇는다.
150만 원에 판매되는 '옹고집의 분신 인형'도 인기다. 머리카락을 하나 붙이면 나를 대신해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해 준다는 복제 인형이다.
리뷰에는 "자산 증식을 위해 인형 두 개 사서 세 군데 회사에 취업하려다가 서류 제출에서 걸렸네요. 환불해 주세요" 등 재치 있는 항의(?)가 빗발친다.
이 사이트는 지난 2월 일본에서 먼저 화제가 되었던 가상 쇼핑몰 '카우카우'를 모티브로 삼았다. '투명 망토', '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사과', '칼로리 마이너스 튀김' 등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가상으로 판매하고 결제 및 리뷰 작성을 지원해 인기를 끈 사이트다.
취업준비생 이모(26) 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쇼핑 앱 장바구니를 채우는 습관이 있어 고치려던 참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사자**'를 보게 됐다"며 "기발한 상품 목록을 보고 웃다가 500만 원짜리 '소원성취권'을 가짜로 결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충동구매를 참는 효과도 있고, 엉뚱한 상품과 리뷰 덕분에 크게 웃고 묘하게 힐링 받는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앱 '도*' 이용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가짜 돈으로 마음껏 '탕진'하며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앱 '도*'도 있다.
이 앱에서는 의류, 전자기기, 화장품, 생활용품 쇼핑은 물론 60개 이상의 가상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또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해외여행 비행기 표를 가상으로 예매할 수 있는데, 콘서트의 경우 이용자가 원하는 공연을 검색해 날짜와 좌석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실제 돈은 한 푼도 들지 않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실제 음식이나 물건이 오지 않더라도 메뉴를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는 행동 자체가 대리만족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동 소비나 과식 이후에는 으레 후회와 부담감이 따르기 마련인데 가짜 사이트에서는 그런 후회 없이 결제 직전까지의 즐거움만 얻고 충동 소비를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그러나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으로 끝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제 식사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듯, 가짜 사이트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충동을 줄이는 대체 행동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실제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자신의 충동적 행동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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