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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15개 매장·700명 직원 거느린 K-뷰티 유통 기업 일궈
마흔다섯에 도전한 아메리칸드림…실패 끝에 성공 신화
"빨리 보다 정확히, 천천히…미리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더 클래식 500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박형권 뷰티마스터 회장. 2026. 6. 7.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미국을 넘어 캐나다와 중남미를 잇는 K-뷰티 산업 유통 허브를 구축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거점으로 K-뷰티 유통 왕국을 일군 박형권(71) 뷰티마스터 회장은 최근 신제품 출시 미팅 등 유통망 확대를 위해 방한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2000년 마흔다섯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2년 뷰티 유통 사업을 시작한 뒤 20여 년 만에 15개 매장과 7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유통기업을 키워냈다.
애틀랜타 매장의 경우 6천611㎡(약 2천 평) 규모로 25만 종의 헤어·미용 제품을 갖춘 초대형 유통 공간이다.
성공 신화의 출발점은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살던 친척 할아버지가 귀국해 "미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면 한 달에 1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건넨 한마디가 어린 박 회장의 마음에 불씨를 댕겼다.
10대부터 품어온 미국행 도전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르고 나서야 현실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려온 아메리칸드림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미국에 왔는데 와 보니 언어도 안 통하고 참 힘들었죠. 제가 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곤 한국 사람 상대하는 것밖에 없어서 해보지 않은 음식 배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험 없는 배달업은 8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실패 뒤 새 활로를 모색하던 박 회장의 눈에 미용 유통업이 들어왔다. "70~80%가 한인들이 장악한 비즈니스더라고요. 그래서 뛰어들면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했죠."

[ KBS 1TV 유튜브 화면 캡처]
2002년 가발 판매점으로 시작한 첫 달 매출은 한화로 약 2천만 원. 그러다 불과 2년 만에 월 매출 2억 원, 이듬해에는 4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가파른 성장의 뒷면에는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다. "담배도 골초였고 술도 많이 마셨지만, 일절 끊고 10년간 바깥 활동을 안 하고 오직 집과 가게만 오갔어요".
10년간 지각 한번 없이 사업에만 매달렸다. 박 회장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가족들의 자유를 뺏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전 세계가 멈춰 선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국을 설득해 "미용용품 매장은 일상에 꼭 필요한 곳"임을 인정받았다.
이때 그는 수익을 사회로 환원할 결심을 굳혔다. "남들이 구매하지 못하는 마스크 200만 장을 확보해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죠."
나눔 철학은 장학사업으로 이어졌다. 박 회장은 20여년간 쌓은 수익으로 2019년 '뷰티마스터 뷰티풀 장학재단'(BMBS)을 설립했다.
박남권 채플뷰티 대표, 마이크 글랜튼 전 조지아주 하원의원과 함께 공동 창립한 이 재단은 조지아·플로리다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150명을 매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한다.
지난해에는 총 15만 달러(약 2억4천만원)를 지급했다. 박 회장은 "단순히 재정 지원을 넘어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뷰티마스터 뷰티풀 장학재단 제공]
지역사회와의 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조지아 한인 범죄예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인 사회와 지역 경찰 간 신뢰 구축에도 앞장섰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애틀랜타 지회장을 맡아 고국과 한인 무역인들을 연계하는 역할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2023년 제25회 조지아 소수인종 비즈니스상(GMBA)을 받았다.
치열한 노력 끝에 사업은 번창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대형화 전략으로 돌파했다. 기존 매장보다 10배 큰 매장으로 늘렸다. 경비와 물류 문제로 고생했지만, 시스템이 안정되면서 전 미주 뷰티 업계에 대형화 바람을 일으켰다.
약 3년 전부터 불어온 K-뷰티 붐은 사업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지난해 대형 인플루언서의 매장 방문 영상이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지난 2월 KBS 1TV 설 특집 '글로벌 한인기행 김영철이 간다'에 방송되면서 브랜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박 회장은 미래를 위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적극 대처하고 있다. 그는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겨우 먹고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며 대형 경쟁자를 이길 최강 병기로 AI를 꼽았다.

[뷰티마스터 제공]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사람 중심 경영이다. 700명 직원, 특히 매니저들에게는 미국 대기업 임원급 연봉을 지급한다.
"이익이 나면 같이 나눠 먹어야지, 나 혼자 다 가져가려고 하면 조직은 깨집니다."
가족 경영도 안착했다. 딸 둘과 사위, 아들 등 다섯 가족이 각자 분야를 책임지며 2세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박 회장은 "직원들이 나를 도와줘서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모든 직원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장은 "I can do it"이 아니라 "We can do it(우리는 할 수 있다)"이다. 작은 가발 매장에서 시작해 K-뷰티 유통 제국을 일군 그의 여정은 한국인 특유의 뚝심과 개척 정신을 보여준다.
인터뷰 말미, 박 회장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들과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평생 지켜온 도전의 철학을 담담하게 전했다.
"미국은 아직도 꿈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어요.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도전하세요"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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