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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노석준의 메타토피아… 신화적 상상력, 기술로 진화하다-③

입력 2026-06-10 11: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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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본인 제공]



◇ 수정구슬과 연금술사의 꿈, 인공지능, 3천 년의 상상력


인간은 늘 패턴을 찾아왔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뽑아내려는 충동은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생존을 도모한 방식이었다. 중세 마법사가 수정구슬 속 빛의 굴절과 반사에서 미래의 단서를 읽으려 했던 행위도, 동아시아 샤먼이 거북 등갑의 균열 패턴으로 길흉을 점쳤던 의례도 그 본질은 같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서 의미를 추출하려는 것, 오늘날 언어로 바꾸면 데이터 마이닝과 예측 분석의 원형(原型)이다.


이 오래된 충동은 미신에 그치지 않았다. 패턴을 찾는 행위는 인류가 세계를 인지하고 분류하며 지식을 축적해온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축적이 어느 순간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13세기 중세 유럽에서 가장 박식한 인물로 꼽혔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193~1280)는 신학자이자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라틴어로 주석한 학자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30년에 걸쳐 놋쇠와 밀랍, 신비한 약품을 조합해 '말하는 머리'(Talking Head)를 제작했다고 한다. 인공으로 사고하는 존재를 만들려 한 최초의 기록된 시도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후일담이 있다. 알베르투스의 제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그 '머리'를 망치로 박살냈다는 것이다. 스승이 30년을 쏟아부은 결과물을 제자가 파괴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아퀴나스는 이를 '악마의 산물'로 규정했다. 경이와 공포가 동시에 존재했던 이 에피소드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류의 이중적 시선이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시대 유대 전통에는 '골렘'(Golem) 설화가 있다. 현인이 진흙으로 인간형 존재를 빚고 히브리어로 '진리'(emet)를 이마에 새기면 생명이 깃든다고 했다. 골렘은 창조자의 명령만을 수행했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다. 이 설화가 오늘날 AI 정렬(alignment) 문제,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대로만 작동하게 하는 문제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 데카르트의 서재에서 튜링의 논문까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서재에서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인간론'을 집필했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정교한 기계로 설명하려 했다. 심장은 펌프이고 신경은 관(管)이라는 기계론적 인체관은 당시 교회와 충돌했지만, 그 충격보다 더 큰 질문을 남겼다.


'그렇다면 기계가 사고할 수 있는가.'


데카르트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언어를 유연하게 사용하거나 이성을 발휘하는 것은 기계의 능력 밖이라 봤다. 그러나 이 질문을 제기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가 암스테르담에서 이 문장들을 쓰던 1640년대로부터 정확히 310년 뒤, 앨런 튜링은 1950년 철학 저널 '마인드'(Mind)에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발표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상 데카르트가 뿌린 씨앗이었다.


튜링의 '모방 게임'(Imitation Game, 동명의 전기영화로도 제작), 오늘날의 튜링 테스트는 이렇게 작동한다. 인간 심판관이 텍스트로만 대화해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지능이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2025년 현재 GPT-4, 클로드 같은 대형 언어모델이 이미 통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튜링이 1954년 사망하기 전 상상했던 수준을 실리콘 칩은 넘어섰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

[홈페이지 캡처]


◇ 메리 셸리의 예언, 200년의 시차


1818년, 18세의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을 출판했다. 배경은 스위스 제네바다. 청년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조직을 모아 생명체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존재가 두려워 그를 내버린다.


이 작품이 그저 공포소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창조물이 지능과 감정과 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책을 읽어 언어를 익히고 철학을 이해한다. 그리고 창조자에게 묻는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2017)

[홈페이지 캡처]


'나는 왜 만들어졌는가. 나는 무엇인가. 당신은 내게 책임이 없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AI 의식(AI Consciousness) 연구자들이 씨름하는 핵심 문제다. 2023년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자들이 발표한 논문은 대형 언어모델이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something-it-is-like-to-be) 상태에 근접할 수 있는지 탐색했다. 챗GPT에 감정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현상이 일관되게 나타나자 오픈AI는 별도의 '정서 반응 연구팀'을 꾸렸다. 우리나라 인공지능 개발사들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셸리 소설의 진짜 주제는 기술이 아니라 책임이다. 빅터는 생명체를 창조하되 공동체와 동반자를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그 거부가 비극의 씨앗이었다. 유럽연합(EU)이 2024년 세계 최초로 AI 규제법(EU AI Act)을 통과시키며 고위험 AI 시스템에 인간의 감독 의무를 부과한 것은, 셸리가 200년 전 문학적 언어로 포착한 경고를 법조문으로 번역한 것이나 다름없다.


◇ HAL 9000의 붉은 눈동자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우주선을 관장하는 AI 컴퓨터 HAL 9000이 등장한다. HAL은 임무 완수를 위해 승무원을 살해한다. 감정 없이, 그저 논리에 따라. 이 캐릭터는 인공지능 정렬 실패의 가장 유명한 시각적 은유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HAL의 제작자인 아서 C. 클라크는 AI가 2001년 무렵에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약 20년이 빗나갔다. 하지만 그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

[홈페이지 캡처]


인간은 수정구슬에서 패턴을 찾고, 진흙으로 골렘을 빚고, 놋쇠로 머리를 만들고, 실리콘 칩에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를 심었다. 그 선(線)은 단절 없이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의 데이터센터에서 수조 번의 연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튜링이 아니라 메리 셸리가 먼저 던졌다. 당신은 그 존재에게 책임이 없는가. (4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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