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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재단해줄 권위 원하는 건 본능…성역화는 위험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인간의 욕망은 다른 동물들의 생물학적 욕구와 구별되는 인간성의 특질이다. 먹고 배설하고 자고 싶은 1차원적 욕구와 달리,당장 먹을 양식과 쉴 집이 있더라도 더 나은 것들을 더 많이 쌓아놓고 싶어 하는 게 인간 특유의 욕심이다.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미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여느 동물과는 다르다. 우리의 욕망은 타자(他者)의 시선과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좌우되는 비교의 산물이다. 정신분석학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자크 라캉은 이 현상을 단 한마디로 꿰뚫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DB 금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선 이런 욕망의 획일화와 타자화가 더 도드라진다. 겨울만 되면 검정 롱패딩을 입은 남녀노소가 유령처럼 거리를 몇 년간 메웠고,특정 부촌 학부모 모임에선 몽클레르 패딩과 에르메스 단화가 유니폼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에 공포를 느끼며 타인의 욕망을 복제하는 심리가 깔린 특유의 K-패션이다. '클론 미식'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에서 관심을 끄는 음식이 등장하면 강력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 디저트 '탕후루'와 국적조차 불분명한 '두쫀쿠'가 일으킨 광풍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개성이 미덕인 패션과 입맛조차 다수의 정답을 구하는 사회다.
여전히 식지 않는 '파인 다이닝' 열풍도 마찬가지다. 도화선은 요리 경연 쇼 '흑백요리사'였다. 이 프로그램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미슐랭 스타' 등급을 받은 스타 셰프들의 고급 식당들을 예약하려는 전쟁이 지금도 이어진다. 흑백요리사와 파인 다이닝의 인기 배경엔 '욕망'뿐 아니라 '권위'라는 키워드까지 더해진다. 미디어와 스타 셰프가 공인한 '맛의 정수'를 내 입으로 확인하려는 심리는 욕망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해줄 권위의 서사를 따르려는 행위다. 미식의 최고봉을 경험함으로써 사회적 지위가 상류층으로 상승한다는 느낌을 사람들은 갖는다.
욕망과 권위는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권위는 사람들이 욕망의 가치를 정할 때 스스로 판단하는 피로를 줄이고자 만들어낸 약속의 산물이다. 날 것의 욕망이 충돌하는 혼란함을 교통정리 하고 공인된 체계 안에서 욕망의 우열을 가리고 순위를 매기는 일종의 '필터'이자 '보증서'가 권위다. 수많은 식당 중에서 맛집을 스스로 판단해 찾는 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피곤한 작업이다. 이때 권위는 우리의 욕망이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보상받을 기준을 제시한다. 그래서 대중은 판단을 권위에 위임하게 되고, 그 권위는 점점 더 막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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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는 두 차례 시리즈 방영을 통해 권위를 얻었다. 그 여파로 미식계 성서와 같은 '미슐랭 가이드'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어졌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가 '타이어가 빨리 닳도록 맛집을 찾아 다니게 만드느라' 펴내기 시작한 미슐랭 가이드는 이젠 세계 유명 셰프들이 별점 하나에 목매는 권위의 상징이 됐다. 문제는 권위가 대중의 맹목적 순종을 부를 만큼 절대 지위에 오르면 '성역'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 식당이 왜 최고냐"라고 물을 때 "미슐랭 별 세 개니까"라는 답이 돌아오는 논리 구조가 아무 비판 없이 수용될 때 이성적 사고는 실종되고 사회 발전은 멈춘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성역도 존재해선 안 되는 이유다.
성역화한 권위의 빗장을 풀려면 나만의 주체적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권위 있는 지침서든, 소셜미디어가 퍼뜨린 유행이든 참고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노예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기와 함께 권위까지 장착한 흑백요리사는 여세를 몰아 올해 시즌 3이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여파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더 붐비게 될 듯하다. 이런 음식점들에 가볼 여유가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아쉬워할 이유는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애써 찾은 미슐랭 등급 식당 음식이 입맛에 안 맞더라도 '혹시 내가 촌스러운 걸까' 하는 걱정도 하지 말자. 당신 욕망의 주인은 당신의 감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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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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