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허기 달래던 대용식에서 K-푸드 아이콘으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안병근은 "배가 고파서 라면 불기만을 기다렸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는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로 신드롬을 낳았다. 전설이 된 이 에피소드들은 사실과 달랐다. 안병근은 훗날 "과장된 얘기"라고 했다. 임춘애의 '라면소녀' 신화도 육상부 코치의 하소연을 부풀린 언론 보도에서 비롯됐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가난과 근성, 헝그리 정신을 읽고 싶었다.
라면이 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63년이다.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일본에서 제조법을 들여와 출시한 '삼양라면'은 맑은 닭고기 국물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이던 시절 1봉지당 10원이었다. 싸지도 않았고, 맛도 외면받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고춧가루를 넣어야 우리 입맛에 맞겠다"고 조언했고, 이것이 K-라면 매운맛의 효시가 됐다는 일화가 있다.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K-라면의 정체성이 그 문장 안에 녹아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수입된 라면을 한국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감각으로 새로 빚어냈다.
라면 시장을 개척한 것은 삼양식품이었다. 그러나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를 잇달아 성공시킨 농심이 시장을 석권했다. 그 변곡점은 1986년 신라면의 등장이었다.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매운맛은 한국인 입맛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반면 삼양식품은 1989년 '우지 파동'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대법원 무죄 판결도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삼양식품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2012년 불닭볶음면이 유튜브 먹방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챌린지를 타고 세계적 인기를 끌며 부활에 성공했다. 시장을 제패한 농심과 살아 돌아온 삼양식품. 두 회사의 경쟁이 곧 'K-라면'의 역사다.
농심은 13일 "출시 40주년을 맞은 신라면이 누적 매출 20조원, 누적 판매량 425억 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농심은 1991년 이후 국내 라면시장 1위를 지키고 있으며, 해외 매출 비중만 40%에 달한다. 미국의 CNN은 최근 경북 구미 농심 공장을 직접 찾아 하루 600만 봉지를 쏟아내는 자동화 생산라인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K-라면은 한 끼를 넘어 문화 아이콘이 됐다"고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 속 짜파구리 장면, K-드라마와 먹방 콘텐츠 속 라면 장면이 세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해 K-라면 수출액이 15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배고픔을 달래던 대용식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됐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고 했다. 라면은 누군가에겐 가난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겐 청춘 시절의 야식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K-푸드의 첫인상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인스턴트 식품 하나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품고, 한류의 상징으로 진화했다. 라면에 한번 인이 박히면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 이제는 세계인의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