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페어뱅크스=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알래스카는 흔히 혹한의 땅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오로라와 온천, 겨울 체험의 매력이 넘치는 여행지다.
특히 페어뱅크스 일대는 겨울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와 온천, 개썰매, 얼음낚시 등 특유의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보라색과 녹색 오로라가 한꺼번에 관측된 밤 [사진/성연재 기자]
◇ 페어뱅크스 그리고 알래스카
인천에서 출발해 시애틀을 거쳐 다시 페어뱅크스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실제 국제선을 두 번 타는 과정이다. 긴 이동 끝에 페어뱅크스에 도착해 공항 내부에 전시해 둔 대형 눈사람 인형을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북국의 도시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페어뱅크스는 흔히 오로라 도시로 먼저 알려졌지만, 도시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금의 역사다. 페어뱅크스는 1902년 인근 구릉지에서 금이 발견되며 본격적으로 성장한 도시다. 체나강 기슭에 교역 거점이 세워졌고, 그것이 도시의 뼈대가 됐다. 지금도 이곳이 '알래스카의 황금 심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금광의 기억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북방의 도시답게 거칠지만, 동시에 낯선 이를 맞이하는 태도에는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북쪽의 혹한 속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페어뱅크스 눈길을 의존하며 걷는 노부부 [사진/성연재 기자]
◇ 사랑을 고백하는 북국(北國)의 밤
하루 전체 일정을 마친 뒤 잠자리에 들 즈음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도 잠시 다시 일행은 교외로 향했다. '오로라 뷰잉'(오로라 관측)에 나서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밤이 휴식의 시간이지만, 페어뱅크스에서는 이 시간이 오히려 활발한 시간이다.
페어뱅크스 동북쪽의 한 지점으로 향했다. 캄캄해야 빛 공해가 없기에 이곳은 완벽한 장소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장소에 차들이 차례대로 도착하고 있었다.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이었다. 다행히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거대한 산장 건물이 있었다.
일행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삼각대를 세우고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산장의 불빛이 거슬렸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빛 공해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캄캄한 눈밭 아래로 내려가니 자그마한 나무 산장이 하나 눈에 띈다. 삼각대를 세우는 순간 거대한 녹색과 보랏빛이 춤을 추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은 녹색 오로라가 관측되지만, 이날은 오로라 지수가 높은 날이라 했다. 그래서 평소 잘 보이지 않던 보라색이 화려하게 수를 놓은 것이다.

오로라 아래서의 청혼 [사진/성연재 기자]
페어뱅크스 관광청의 타일러 씨는 1년에 10번 정도 볼까 말까 한 오로라라고 했다. 추운 날씨에 수동으로 초점을 고정하고 저속 셔터로 오로라를 촬영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발을 디뎠던 곳은 다져져 있었지만, 이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몸 전체가 눈에 빠진다.
2시간쯤 지났을까. 아무리 단단히 껴입어도 긴 비행 끝에 곧바로 맞닥뜨린 낯선 추위는 생각보다 훨씬 거셌다. 몸은 무거워졌고, 집중력도 조금씩 흐려졌다. 무엇보다 수동초점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산장 쪽으로 내려오는 남녀 2명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불빛이 시야를 흔들었지만 일단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액정을 확인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들어왔다. 남성이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중에 그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감은 맞았다. 버지니아주에서 왔다는 그 커플은 오로라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막 청혼을 마친 참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만 부각되는 듯했다. 막연히 하늘의 신비로만 보이던 오로라는 그 순간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을 비추는 빛처럼 보였다.
그렇게 새벽 1시까지 쏟아진 오로라를 정신없이 담은 뒤 숙소로 돌아왔다. 페어뱅크스가 세계적인 오로라 관측지로 꼽히는 배경에는 분명한 통계가 뒷받침한다. 현지에서는 이곳이 오로라 활동이 활발한 권역 아래에 자리한 데다 강수량이 비교적 적어 맑은 밤이 많고, 인구 밀도가 낮아 인공조명 영향도 적다고 설명한다.

얼음으로 만든 곰 동상 [사진/성연재 기자]
◇ 혹독한 자연 극복하는 알래스카의 삶
다음날 낮, 알래스카대학교 북부박물관과 모리스 톰슨 문화·방문자센터를 둘러봤다. 박물관을 돌며 느낀 사실 한가지는 페어뱅크스가 오로라 하나만을 가진 곳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북부박물관은 알래스카 자연과 원주민 문화, 북방의 생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너 늑구냐?" 박제된 알래스카 늑대를 살펴보는 관람객 [사진/성연재 기자]
이 지역은 눈과 얼음만의 지역으로 본다면 오판이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형성된 삶의 방식, 멀고 넓은 땅 위에서 이어져 온 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였다. 모리스 톰슨 센터 역시 단순한 관광 안내소라기보다 북방 알래스카에 대한 이해를 키워주는 곳이었다. 사람과 야생, 계절과 풍경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왔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을 표현한 작품 [사진/성연재 기자]
페어뱅크스 도심은 예상보다 훨씬 소박한 풍경을 전해줬다. 골드러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들 사이로 현대적인 상점과 식당, 공공미술이 섞여 있었다. 변방 도시가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기고 세월을 견디며 만들어낸 유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체나강이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여름에는 수상 활동이, 겨울에는 두껍게 언 강을 건너는 재미도 있다.

자동차 박물관인 파운틴헤드 앤틱 오토 [사진/성연재 기자]
자동차 박물관인 파운틴헤드 앤틱 오토는 겉으로 보면 알래스카 여행 일정 속에서 다소 의외의 장소처럼 보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개척과 이동의 역사라는 점에서 페어뱅크스와 잘 맞아떨어졌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고안된 오래된 자동차들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이동 수단은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연결의 문제였음을 말해주는 유물이었다. 금광의 시대가 지나고 도시가 성장하는 동안, 결국 사람과 물자를 움직인 것은 길이었고 탈것이었다. 페어뱅크스의 역사가 금에서 시작됐다면, 도시를 키운 것은 이동의 힘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