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16)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이동은 '투쟁'

입력 2026-05-07 07:00:03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이은별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




이은별 교수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짐바브웨에 도착한 후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중고차를 알아보다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주행거리가 10만㎞가 훌쩍 넘은 차들이 미화 2만달러(약 2천9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매물이 적어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행거리와 무관하게 그저 '굴러가는 차'로 형성된 중고차 시장에 대한 나의 의아함은 곧 거리를 가득 메운 진귀한 모습의 차들을 보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뒷 범퍼가 떨어진 채 달리는 승용차, 사람들로 가득 찬 미니버스, 승합차 뒷창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모객하는 안내원. 이 낯선 광경들은 짐바브웨의 자동차 시장과 대중교통의 현실을 압축하고 있었다.




하라레 거리를 달리는 차량

유지보수비라도 아끼려는 의도일까[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라레 도로 풍경, 승합차에 매달려 가는 사람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아프리카는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에서 수출하는 중고차의 약 40%가 유입되는 최대 시장이다. 특히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동남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우측 핸들을 사용하기에 일본산 중고차를 선호한다. 짐바브웨 중고차 시장에서는 3천∼7천달러 선의 도요타 비츠(Vitz), 혼다 피트(Fit)와 같은 소형차가 인기 있다. 이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높은 신뢰도와 부품 조달의 용이성도 있지만, 다른 차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중고차 가격 때문이다.


그러나 증가하는 국내 자동차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급 불균형 속에서 소비자들은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제사회는 UNEP(유엔환경계획)를 필두로 '아프리카를 위한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한 중고차'(Safer and Cleaner Used Vehicles for Africa)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수입 차량에 대한 모호한 배출가스 기준을 이용하여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노후 차량이 쏟아져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촘촘히 연결된 대중교통 수단과 개인 차량 운행이 당연한 일상이지만, 짐바브웨에서는 그렇지 않다. 짐바브웨의 경우 선박을 통해 들어온 차량이 남아공의 더반(Durban)항이나 모잠비크의 베이라(Beira) 항을 거쳐 육로로 이동하므로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신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고차라 하더라도 수입 관세가 높은 편이다. 예컨대 일본에서 2천500달러로 비교적 저렴한 2012년식 혼다 피트는 운송료·항만 이용료·중개 수수료 및 차량 등록비에 관세를 더하면 7천달러가량 된다. 더군다나 최근 중동 사태 여파로 2026년 3월 기준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17달러(한화 약 3천200원)까지 올랐으니, 짐바브웨에서 자동차는 일상적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접근하기 어려운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




수입한 고가의 자동차는 중산층의 전유물일 뿐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자동차가 중산층 이상의 전유물인 짐바브웨에서 그렇다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갖춰진 것도 아니다. 국영 버스 ZUPCO(Zimbabwe United Passenger Company)는 도심 내 반경 20㎞ 구간의 버스요금이 0.5달러로 저렴한 편이지만, 사실상 운행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출퇴근 시간에는 이용하기 어렵다. 이에 사실상 시민의 발이 되어 주는 것은 '콤비'(Kombi)라 불리는 15인승 미니버스인데 운전사와 차장을 제외하고 19명 가까이 태우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콤비 운전사 간 치열한 노선 경쟁 속에서 과속 난폭 운전까지 더해 도로의 무법자로 악명 높다. 개인 사업자 등록으로 운영되긴 하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노린 무허가 차량이 즐비하여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승객도, 보행자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물론 앱 기반(Vaya Africa, Hwindi, inDrive) 택시 서비스도 있지만, 스마트폰과 온라인에 등록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갖춘 도시 중산층에 한정된 선택지일 뿐이다.




하라레 시내로 들어가는 콤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 가운데 콤비조차 부족한 상황을 메우기 위해 시민들이 만든 이동 수단이 바로 '무시카시카' 또는 '고 패스터'(Go Faster)라 불리는 미등록 개인 차량이다. 무시카시카는 원래 쇼나어로 '승차 지점'을 뜻하지만, 이제는 무법적 합승 운행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무시카시카 운전자들은 승객이 보이면 아무 데서나 주정차한다.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5인승 차량에 9명 가까이 구겨 넣는 등 위험천만한 운행을 일삼는다. 딱히 정해진 노선도 없다. 대강 목적지가 비슷하면 1달러에서 2달러 정도를 내고 합승하면 된다.


국영버스(ZUPCO)의 몰락이 야기한 대중교통 부재를 이러한 비공식 이동 수단이 채우는 이유는, 하라레 외곽에서 도심을 통근해야 하는 이용자의 수요와 생계를 위해 면허나 허가 없이도 운행을 감행해야 하는 운전자들의 목적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때 단속을 강화해 불법 이동 수단을 근절하려 시도해 보니 되려 통근자들은 대거 발이 묶이고 뇌물이 성행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시카시카도 이용하기 어려울 때, 1달러로 트럭에라도 몸을 싣는 사람들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따라서 하라레 거리의 낡은 자동차 한 대는 단순한 교통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가난을 상징하는 풍경도 아니다. 이는 양극화된 세계 자동차 제조업, 중고차 시장의 흐름, 중산층에게는 사회적 지위의 표식, 누군가에게는 생계 수단이자 실업의 탈출구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이동 방식이 얽힌 복잡한 풍경이다. 범퍼가 떨어진 채 거리를 내달리던 자동차와 사람들을 한가득 싣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콤비가 공존하는 모습은 불평등한 이동성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투쟁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교수


현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05-07 10: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