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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차원 자성' 선도자 박제근 "남이 안한 것 못하면 창피"(종합)

입력 2026-05-04 1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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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서 선도자로 15년 개척…"본 무대선 '누가 먼저 했나' 봐"


새 분야 연구자는 '특공대'…"실패 감수할 신뢰 필요"

논문 수 경쟁 넘어 '상징' 연구 필요…"서울대엔 무엇이 있나"




인터뷰하는 박제근 서울대 교수

[촬영 조승한]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에서 남이 안 한 걸 못 한다고 하는 게 정말 창피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서울대도 그렇고 제자나 후배들 역량이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도 못 따라갈 만큼이 아니다"며 "추격자는 잘해도 2등이다. 누군가는 사슬을 끊고 천장을 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원자 한 층 두께의 2차원 물질도 자석 성질을 낼 수 있다는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다.


◇ 2차원 자성체 구현…초고밀도 메모리·양자컴퓨팅 적용 기대


물질의 자성은 전자의 각운동량을 나타내는 스핀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2차원 물질은 일정 온도 이상에서 스핀 정렬이 풀리며 갑자기 자성을 잃는 '자성 상전이' 현상으로 자성을 띠게 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박 교수팀은 흑연처럼 층상 구조를 가진 반데르발스 물질이라면 흑연에서 테이프를 떼 붙였다 만든 그래핀(탄소 원자가 한 층으로 이뤄진 물질)처럼 떼어낼 수 있고, 자성을 가진 물질을 소재로 활용하면 자성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분자가 이온 결합이나 공유 결합이 아닌, 분자 간 약한 인력인 반데르발스 힘으로 결합된 고체를 말한다.


그는 2016년 영하 118도 아래에서 삼황화린철 자성 원자층을 추출해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2차원 자성체를 발견하면서 박 교수는 물리학계 숙원이던 '두께 없는 2차원 자석' 구현의 길을 열었다.


또 초소형 컴퓨터, 스핀 메모리 소자 등 기존 물리 현상을 뛰어넘는 새 소자를 개발하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기존 반도체보다 훨씬 유연한 기능 설계가 가능해져 차세대 반도체나 초고밀도 메모리, 양자컴퓨팅, AI칩, 각종 센서, 광전자·디스플레이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본무대선 '누가 먼저 했나'…추격형 연구 한계 절감"


70년간 이론에 머물던 이 분야는 박제근 교수가 개척한 지 16년 만에 매해 1천여 편 이상 논문이 발표되는 핵심 연구 영역으로 성장했다.


지난달에는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리뷰스 오버 모던 피직스'(RMP)에 연구성과와 전망을 집대성한 '국제 표준 교과서'격 논문을 내며 학계 인정을 다시 받았다.


RMP는 특정 분야를 개척했거나 최고 권위자에게만 집필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처음부터 선도자는 아니었다.


박 교수는 전 세계가 뛰어들던 '다중강성'(한 물질에서 강자성, 강유전성 등 여러 강성을 내는 특성)에서 이른바 '추격형 연구'로 성과를 내왔지만 국제 무대에서 한계를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본 무대에서는 누가 먼저 했냐가 중요하다"며 "잘했다는 평가가 '애썼다'는 느낌이었다. 인정이 어느 선을 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박제근 교수 연구팀 '2차원 자성' 연구, 물리학 최고권위지에 게재

(세종=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제근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van der Waals)' 분야 연구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물리학회(ARS) 발행 학술지 'RMP(Reviews of Modern physics)'에 게재됐다. 2026.4.22 utzza@yna.co.kr


◇ 70년 난제 도전 결심…'어두운 방 불 켜기'로 판 뒤집다


2010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방향을 틀었다.


RMP가 표현한 '어두운 방에 들어가 불을 켜는' 연구를 결심했고, 1940년대 제시된 뒤 70여년 간 풀리지 않던 2차원 자성 문제에 도전했다.


1970년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도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던 난제였던 만큼 주변에서는 "미국이 했는데 포기하면 이유가 있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고민 없이 실행에 옮겼다.


빠르게 추격할 때는 답을 알고 달려가는 과정이었다면, 새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물질 발견부터 측정법 개발, 해석법 개발 등 지난한 실타래를 푸는 과정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2012년 후보 물질을 발견해 2015년부터 논문 투고에 나섰지만, 전에 없던 이론에 학계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그해 논문도 내지 않은 연구를 한국물리학회 초청 강연에서 세계 최초로 발표하며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미리 공개하는 '강수'를 뒀고, 이듬해 논문을 잇달아 펴내며 1~2년 사이 국제 학계의 반응을 뒤집었다.


이후 10년간 분야를 주도해 온 그는 지금은 추격이 거세다고 평가하며 "절반 가까운 물질을 우리가 먼저 발표했으나 지금은 미국, 중국, 유럽이 같은 선상에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전자의 특성인 '스핀'을 정보 처리에 활용하는 스핀트로닉스와 2차원 자성에 기반한 물리적 원리를 가진 새로운 물질을 찾는 연구 등으로 활로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제근 교수 연구팀 '2차원 자성' 연구, 물리학 최고권위지에 게재

(세종=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박제근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van der Waals)' 분야 연구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물리학회(ARS) 발행 학술지 'RMP(Reviews of Modern physics)'에 게재됐다. 2026.4.22 utzza@yna.co.kr


◇ "새 분야 연구자는 특공대…실패 감수할 신뢰·보호 필요"


박 교수는 한국 과학계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그는 "1인당 개인 연구비가 유럽보다도 많은데 여전히 한국에서는 새로 하는 게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지금처럼 빠른 추격자 모델에 머무른 걸 보면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자를 '특공대'에 비유하며 과학계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이야기가 뭔지 제일 처음 알아야 하는 건 과학계"라며 "안 들어봤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것을 알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실패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만큼, 과학계와 정부는 '위험에 처하면 반드시 구해낸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며 "안 된다고 갑자기 통신을 끊어버리면 되겠나"고 비판했다.


그는 "내부 동력은 개인에게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하는 게 사회 시스템이자 정부 시스템"이라며 한국 사회가 한국만의 분야를 개척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박제근 교수

[촬영 조승한]


◇ "논문 수 아닌 상징이 대학 경쟁력…퍼스트 무버 전환해야"


박 교수는 대학 평가 문화에 대해서도 논문 수 등으로 순위를 매길게 아니라 상징하는 연구나 인물을 봐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2023년 QS 평가에서도 서울대가 29위를 기록해 캐나다 토론토대를 제쳤지만, 토론토대에는 인공지능(AI) 대부로 여겨지는 제프리 힌턴 교수 같은 상징적 인물이 있다고 그는 설명하며 "서울대의 순위는 허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런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구호에만 그쳐 온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을 이제는 이뤄야 할 때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 1천 큐비트 목표를 설정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는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며 "적어도 상위 몇 대학만큼은 새로운 걸 만들고 최정상에 오르려는 파괴적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7월 개소할 막스플랑크연구소 양자물질 국제공동연구센터를 유치한 것도 한국에 오면 '양자물질'을 배울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K-팝이 뜨니 한국 관광객이 느는 것처럼 한국에 갔을 때 무언가 있다고 인식해야 외국 학자들도 오게 된다"며 "서울대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뭔가가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학계 문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박 교수는 "남에 대한 인정이 박하고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있다"며 "선도자를 키우려면 경쟁자도 동반자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증명했듯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를 개척하는 도전을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며 "좋은 논문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학자의 끝은 아니다. 더 큰 봉우리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2차원 자성 물질 소개하는 박제근 교수

[촬영 조승한]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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