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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선임기자 = # 1989년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씨는 1997년 한국에 돌아와 가수로 데뷔했다. 유씨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모국에서 최고의 댄스 가수로 사랑받다가 병역의무 이행을 통지받은 상황에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유씨가 방송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한 자기 말을 뒤집고 2002년 1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자 한국 사회는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였다.

[촬영 김성민·배재만]
#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간 김범석(미국명 Bom Kim) 쿠팡Inc 의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가가 됐다. 그는 2010년 쿠팡을 창업해 2021년 3월 모기업 쿠팡Inc의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한다. 이후 김 의장은 한국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의 규제와 동일인(총수) 지정 논란이 일자 한국법인에서의 공식 지위에서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쿠팡Inc 의장을 맡으면서 한국 쿠팡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대기업집단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자 쿠팡이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했다. 공정거래법에서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총수) 또는 그 친족을 말한다.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이익 취득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1986년 도입했다.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이나 문어발 확장을 해온 대기업그룹과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외환위기 사태로 줄줄이 쓰러진 이후에 책임 강도가 강화됐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잘못에 법적 책임을 지는 정점에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제도의 본질은 개인의 '국적'이 아니라,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데 있다. 공정위가 5년여간 이어진 '외국 국적자 예외' 논란에서 벗어나 김범석 의장을 쿠팡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은 김 의장의 '실질적 지배력'과 '한국 사업의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 의장이 차등의결권을 통해 막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2026.4.30.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 여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공정'과 '책임' 문제이다. 유 씨가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통한 과실만 취하고 병역 책임을 거부한 것처럼, 김 의장도 한국에서 '이민자가 세운 한국 기업'임을 앞세워 사업을 해오다가 규제와 책임을 피해 '외국인이 창업한 글로벌 기업'이라며 미국으로 떠났다. 병역 의무 앞에 '미국인 스티브 유'를 내세웠듯이, 경제적 감시와 책임 앞에서 '미국인 범 킴'을 앞세우는 것은 기만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의장이 한국 소비자들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로서 영향력과 권한은 휘두르면서도, 사고가 나면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역차별'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유 씨에게만 병역을 면제해줬다면 군 복무 의무를 이행한 한국 청년들과 부모에게 큰 상처가 됐을 것이다.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 모두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해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정상에 오른 것과 대비된다. 만약 김 의장에게만 동일인 지정을 면제해주면 국내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동일인으로 지정돼 사익편취 금지, 공시 의무 등 엄격한 책무를 지고 있다. 쿠팡과 같은 창업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도 마찬가지이다. 쿠팡은 미국 상장사라도 '경제적 실체' 측면에서 주 사업 무대와 수익 원천이 절대적으로 한국에 있는 만큼, 김 의장도 다른 총수들과 같은 법 테두리에서 규제받는 게 시장 경제의 기본이다. '권한 있는 곳에 책임'은 국적을 가리지 않으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규제와 책임을 피하기 위해 통상과 글로벌을 핑계 삼는 건 비겁하다. 그런 기업인은 존경받지 못한다. 김 의장은 더는 워싱턴 로비스트 뒤에 숨지 말고 한국 국민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indi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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