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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AI 콜센터 도입해 원가 절감…소비자 불만 늘어
취약계층 소외…남은 노동자 강도 '악화' 우려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죄송합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해 주세요."
최근 금융사나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마주하게 되는 기계음이다. 단순 문의는 인공지능(AI) 상담사(보이스봇·챗봇)가 신속하게 처리해 준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작 복잡한 문제를 겪는 소비자들은 사람과 통화하기 위해 수십 분간 자동응답시스템(ARS)의 '디지털 미로'를 헤매야 한다.
혁신을 앞세워 앞다퉈 도입 중인 인공지능 콜센터(AICC)의 이면에 '인건비 삭감'이라는 철저한 비용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 '혁신' 포장지 속 알맹이는 '수백억 원가 절감'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와 통신·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AICC 도입 속도는 가파르다.
표면적인 이유는 '24시간 무중단 응대'와 '대기 시간 단축'이지만 기업들이 누리는 핵심 과실은 막대한 운영비 절감이다.
대규모 콜센터의 연간 운영비는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상담의 20~30%만 AI가 1차 처리해도 상담 인력과 시스템 유지 비용이 급감한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단 한 자릿수 비율만 비용이 줄어도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대형 통신사는 AICC 도입 후 월평균 30만 건 이상의 콜을 보이스봇으로 대체하며 상당한 운영비를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기업의 '비용 다이어트'가 고객 만족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최근 AICC 이용 경험이 있는 시민 70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2%가 서비스에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여전히 인간 상담사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87.5%에 달했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개선됐지만, 정작 통화 연결 포기율은 높아지고 소비자들의 체류 시간만 길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결국 사람 찾다 지친다"…취약계층 '디지털 소외'
소비자의 가장 큰 불만은 '상담원 연결' 메뉴 자체를 찾기 힘들다는 데 있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음성봇과 챗봇 등 여러 단계의 AI 관문을 강제로 거치도록 설계된 곳이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봇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반복해 결국 고객이 스스로 전화를 끊도록 유도하는 일부 사례까지 지적되고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이는 해외 소비자단체와 규제 당국이 주시하는 '디지털 다크 패턴(소비자를 속이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경험)'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디지털 기기 조작에 서툰 고령층 등 정보 취약계층은 서비스 접근조차 쉽지 않은 '디지털 소외'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 남겨진 인간 상담사는 '감정노동' 악화
AICC 도입으로 인간 상담원의 노동 환경은 오히려 척박해졌다. 단순 문의가 AI로 넘어가면서 인간 상담원은 AI의 응대에 지쳐 분노한 민원을 떠안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AICC 도입 이후 현장을 경험한 상담사의 60.8%가 "노동 조건이 악화했다"고 응답했다. AICC 도입 이후 일평균 민원 건수 역시 17%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건 악화 이유로는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상담 인력 축소에 따른 업무량 증가' 등이 꼽혔다.
현장에서는 "기계가 1차 방어막을 친 뒤 거기서 걸러지지 않은 고강도 스트레스만 인간 상담원에게 집중되는 구조"라는 불만이 나온다.
◇ "가이드라인 부재…소비자 선택권 보장해야"
상황이 이렇지만 AI 콜센터의 응답 품질이나 사람 상담원으로의 전환 보장 여부를 규율하는 법적 기준은 찾기 어렵다.
전자상거래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일반 규제만 있을 뿐 AI가 소비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 관문'으로 작동하는 행태를 직접 제재할 명확한 규범이 없다.

[연합뉴스TV 제공]
최근 유럽연합(EU) 등에서 AI 기반 고객 응대 시 '소비자의 선택권과 탈출구 보장'을 주요 쟁점으로 다루는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AICC를 단순한 인력 감축 도구로 악용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계는 AICC 도입 시 고용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인건비 절감분을 인간 상담사의 근로 환경 개선 및 취약계층 전용 회선 확충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리함이라는 미명 아래 소비자의 시간과 노동자의 감정을 담보로 삼는 얄팍한 혁신에 대해 꼼꼼한 정책적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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