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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스타 등용문' 미8군쇼…왜색 벗고 한국 고유 대중음악 싹 틔워
'세기의 라이벌' 남진·나훈아…70년대 그룹사운드 전성기·80년대 가왕 조용필
90년대 서태지 이후 댄스 음악 재편…한류 연 H.O.T.·월드스타 BTS

[한국문화예술위원회·빅히트뮤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윤심덕 사진은 '일동타임쓰' 출처. 자료 제공 현담문고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6년 8월 '사의 찬미'를 발표한 이래 지난 한 세기는 곧 우리나라 대중음악사 100년과 일맥상통한다고 평가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슬픔을 달래던 우리 가요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쳐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흐름을 타고 전 세계인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K팝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 미8군쇼는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는 등용문 역할을 했고, 이 무대에서 출발한 가수들은 왜색을 벗고 우리 고유의 대중음악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일제강점기 '사의 찬미'·'황성옛터'…가요 산실된 미8군쇼
1926년 8월 발매된 '사의 찬미'는 노래를 부른 윤심덕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맞물려 화제를 모았다. 2년 뒤인 1928년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옛터'(음반 발매는 1932년)는 고려 옛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빗댄 가사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국민가요가 됐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일제강점기에 나온 이들 히트곡은 시대상이 반영돼 염세주의적이고 구슬픈 정서가 내재했다.
1945년 광복과 1950∼1953년 한국전쟁 이후 우리 대중음악은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 음악 무대인 미8군쇼를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광복 이전까지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대중음악은 미8군쇼를 통해 서구 요소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고, 왜색을 탈피하며 고유의 가요 장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미8군쇼 출신 가수들로는 '미국 한류의 원조'로 꼽히는 김시스터즈, '최초'란 수식어를 많이 몰고 다닌 패티김,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의 한명숙, 미니스커트 붐을 일으킨 윤복희, 작곡가 이봉조와 음악 콤비를 이뤄 활약한 현미 등 면면이 화려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당시 '꿈의 무대'로 불리던 미8군쇼에 서기 위해서는 미군 부대에서 파견된 쇼 관계자가 심사하는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며 "이 오디션을 통과한 가수들이 우리 음악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으면서 '가요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PK프로덕션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초창기 어색한 발음의 영어로 미국 음악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 미8군쇼는 차차 미군 부대를 넘어 우리 대중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연 가수들이 남는 시간을 활용해 TV 방송, 음반 취입, 무대 공연을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도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1961년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의 대히트는 미8군 가수들이 일반 무대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또한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4년 '동백 아가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1960년대 대중음악의 아이콘이자 '엘레지의 여왕'으로 활약했다.

[촬영 이재희]
◇ 호남의 남진·영남의 나훈아…그룹사운드·포크로 꽃핀 청년 문화
미8군쇼는 1960년대 이후 비틀스가 서구 팝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과 맞물려 가요계에 그룹사운드 열풍을 지폈다.
이 시기 '한국의 비틀스'로 등장한 키보이스를 비롯해 신중현과 애드포, 히파이브(후일 히식스), 영화 '고고 70' 주인공인 데블스, '가왕' 조용필이 활동한 김트리오 등 다양한 그룹사운드가 활약했다. 또한 1960년대 음악 감상실 쎄시봉에서는 윤형주,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등 '쎄시봉 4인방'을 비롯해 걸출한 포크 스타들이 탄생했다.
그룹사운드와 포크 음악은 이후 1970년대 청년 문화가 꽃피우는 자양분이 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우리 가요계에선 '호남의 남진 대 영남의 나훈아'라는 불꽃 튀는 라이벌 구도도 형성됐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예아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이래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1960∼1970년대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는 톱스타로 군림했다.
나훈아는 자신이 직접 밝힌 데뷔 연도인 1967년 이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 그리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일약 톱스타로 도약했다. 인기에 힘입어 1971년 '풋사랑'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영광', '우정', '동반자' 등 다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약했다.
나훈아는 당대 최고 남자 가수였던 남진이 월남전 청룡부대에 파병돼 가요계를 잠시 비운 사이 인기가 급상승했고, 1972년 남진이 속했던 지구레코드로 이적하면서 한 지붕 아래 경쟁은 절정을 이뤘다.
1972년 연말 TV 가요 시상식에서도 나훈아(TBC '방송가요대상' 남자 가수상)와 남진(MBC '10대가수청백전' 가수왕)은 상을 나눠 가졌다.
남진은 지난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나훈아를) 1968년 처음 본 것 같은데 내가 군대 다녀오니 크게 성공해 있었다. 나훈아는 우리 가요계에서 큰 힘이 되는 존재였다"며 "라이벌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100억원을 쏟아부어도 억지로는 할 수 없다. 팬들이 만들어 주신 구도"라고 회상했다.

[K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가왕' 조용필·'문화 대통령' 서태지…BTS로 만개한 K팝 한류
1968년 밴드 애트킨스로 데뷔한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가요계 사상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후 '고추잠자리', '물망초', '비련',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모나리자' 등 21세기에도 애창되는 히트곡을 줄줄이 탄생시키며 '가왕'(歌王)으로 우뚝 섰다.
1980년대에는 가왕 외에도 이문세, 이선희, 김완선, 변진섭, 밴드 부활과 이승철, 김광석 등 많은 가수가 사랑받으며 대중음악 붐을 일으켰다.
1990년 데뷔한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등으로 '발라드의 황제'로 불렸다. 또한 1992년 등장한 서태지와아이들은 댄스 음악 위주로 가요계 판도를 바꾸며 청년 문화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쳐 리더 서태지에게 후일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도로시컴퍼니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96년 데뷔해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H.O.T.는 산업화된 K팝 아이돌 1세대 시대를 열었다. H.O.T.가 2000년 중국 베이징에서 성황리에 연 콘서트는 '한류'(韓流)라는 신조어가 퍼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1세대 젝스키스·신화·핑클·S.E.S.·지오디, 2세대 동방신기·빅뱅·소녀시대·카라, 3세대 엑소·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트와이스, 4세대 아이브·에스파·르세라핌·뉴진스 등으로 이어지는 K팝 한류가 만개했다.
보아와 동방신기는 세계 제2의 음악 시장인 일본에서 정상에 올랐고, 싸이는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로 빌보드의 장벽을 허물고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은 '다이너마이트'(Dynamite)·'버터' 등 숱한 히트곡으로 미국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 1위를 최초로 석권하며 K팝 한류를 북미와 유럽 등 서구 시장으로 확장시켰다. '21세기 비틀스'라는 수식어를 얻은 이들은 올해 7월 마돈나·저스틴 비버 등 글로벌 팝스타와 함께 2026 북중미 월드컵 폐막식 하프타임쇼에도 출연했다.

[한터글로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사의 찬미'와 지금의 K팝을 비교해 본다면 우리 대중음악이 염세주의에서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낙관주의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100년 전 '사의 찬미'에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과 여성으로서 받아야 했던 억압 등으로 인한 슬픔이 드리워 있었다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현대 대한민국의 K팝은 서양의 음악을 이식하고 융합해 밝고 진취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며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만든 음악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고, 세계인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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