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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과 세 번째 호흡…"내 연기코드 알아봐줘 반갑더라"
영화·연극 오가며 25년…"55세인데 반도 안 왔어요"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배우 황석정이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8.18. seva@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배우 황석정(55)은 최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에서 '황해'(2010), '곡성'(2016)에 이어 세 번째로 나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첫 촬영 당시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 촬영장으로 향했다. 당시 매니저도 소속사도 없었다.
"대본에는 황정민 씨와의 장면이 짧게 나와 있어요. '이것만 하면 되겠지' 하고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하고 간 거예요. 그런데 현장에 갔더니 한쪽에 사체 덩어리가 널브러져 있는 거예요. 올라서면 미끄덩미끄덩하고."
나 감독은 보건소장 역을 맡은 황석정에게 "검사를 한번 해보라"고만 했다. 황석정은 사체를 이리저리 살피고 건드려보며 그 자리에서 행동과 대사를 만들어냈다.
"그전에는 애드리브를 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너무 놀랐지만 '그래, 한번 해보자' 이러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한 장면을 찍은 뒤에는 호흡과 시선, 대사, 발 위치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카메라가 360도 돌아가는 동안 다시 같은 연기를 해야 했다. 황석정은 "머리에 쥐가 났다"며 당황했던 당시를 돌아봤다.
그런데 나 감독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황석정이 현장에서 만들어낸 장면을 보며 나 감독이 크게 웃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제야 자신과 나 감독의 '코드'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예전에는) 나랑 다르다고 생각했지, 싶었어요. 누군가 내 코드에 대해서 웃어준다는 게 정말 반갑거든요."
'호프'는 황석정에게 한동안 멀리했던 영화에 다시 마음을 돌리게 했다.
2001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한 그는 영화계가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작품의 다채로움이 줄고, 여성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도 정형화됐다고 느꼈다.
"영화가 남자들 위주로 가고 여자들이 없어져 절망했어요. 여자 역할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한, 더 정형화된 듯해서 정말 슬펐어요."
그랬던 그가 '호프'를 찍고는 마음이 달라졌다.
"다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지만, 이제 그런 눈을 갖고 살아야겠단 생각이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즐거워졌어요."

[영화 '호프' 홈페이지 캡처]
그에게 연기는 애초부터 예정된 길도 아니었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리를 전공한 뒤 관현악단을 권유받았지만, 그 길을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연극 한 편이 그를 무대로 이끌었다. 인간의 갈등과 모순, 고통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그래, 난 저기 있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4학년이던 그는 공연을 만든 한양레퍼토리를 무작정 찾아갔다. 포스터를 붙이고 심부름을 하는 등 온갖 잡일부터 했다. 하루에 포스터를 1천장씩 붙여 '포스터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연기를 배우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 배역이 "사랑받지 못하거나, 바보 같거나, 사랑받아서 너무 행복해하거나, 마녀 같은" 식으로 정형화돼 있었다고 돌아봤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어떻게든 해내야 했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제가 무척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거기까지 간 것이지, 원래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황석정은 "제 자연스러움은 생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꾸준한 관찰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라며 "계속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러움과 유니크함, 괴상망측함을 섞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로 25년 넘게 살아온 그에게 농원은 또 다른 무대다. 경기도 양주에서 1천평 규모의 화훼 농원인 '미스황 농원'을 운영한 지도 5년이 넘었다. 직접 꽃을 키우고 팔며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본다.
황석정은 9월 12일 개막하는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을 통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남녀 배우 3명이 같은 역을 맡는 트리플 캐스팅이다. "원래 여자 역할을 남자 배우들이 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됐지만, 여자들이 남자 역할을 하는 건 흔치 않았어요. 이제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게 연극의 재미 아닐까요."
그에겐 직접 작품을 쓰고 연출하고 싶은 욕심도 여전히 있다. 과거 만든 연극 '몬스터'를 다시 무대에 올리고 싶고, 동학을 소재로 한 음악극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다 빛난다고 생각하고, 그게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도 과정일 뿐이고요. 올해 제가 55세인데 반도 안 왔어요. 내가 앞으로 연기자로서 어디까지 갈지 한번 시험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배우 황석정이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8.18. seva@yna.co.kr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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