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영화 '미명' 이원영 감독 인터뷰…실제 아내와 직접 출연
무주영화제 2관왕 등 평단 주목받아…"관객의 감각 넓히는 계기 됐으면"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아침을 먹기 위해 앉은 남자 앞에 뜨끈한 미역국과 밥이 놓인다. 생일을 맞은 남자를 위해 아내가 차린 밥상이다. 밥을 맛있게 먹는 남자 건너편에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해 당시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담화를 전하는 뉴스다.
남자가 다 먹고 식탁을 치우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은 남자의 음성은 놀람이 가득하고 그는 다급하게 집 밖을 나간다.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바닥에 엎드려 운다.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영화 '미명'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아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비상계엄과 아내의 죽음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비상계엄 관련 뉴스는 계속해 화면 바깥에서 소리로 전달된다.
지난 1일 화상으로 만난 이원영(38) 감독은 실제 비상계엄 당일인 2024년 12월 3일 느꼈던 감정이 영화 제작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당시 강사로서 지방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가 고속도로에 너무 없어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는 집에 오고 난 뒤에 비상계엄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불길하다는 단어로 말하기 힘든, 어떤 면에서는 두렵고 낯설기도 하고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감각이 타인, 세상과의 연결 방식에 관한 생각까지 뻗어나가면서 이를 빨리 붙잡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이원영 감독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감독이 당시 품고 있던 생각들도 비상계엄이 영화 배경이 된 이유였다. 그는 "우리가 보이지 않게 어떤 식으로든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가 화두였다"고 했다.
이 감독이 느낀 시대감각도 반영됐다. 그는 우리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이 너무 커서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생각이 반영되듯, 영화는 비상계엄을 비롯해 아내의 죽음 등 일련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는 "기성세대가 저희 20∼30대를 보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고 일에 목숨 걸지 못하느냐'고 하신다"며 "지금 세상이 정치적인 지점을 제외하고도 너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젊은 세대의 의지와 동력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색다른 구도도 눈길을 끈다. 영화에서 남자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나는 장면은 거의 없다. 관객은 그의 뒷모습이나 그의 얼굴 일부만을 보게 된다. 대상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한 촬영이다.
이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만들고자 한 목표에서 비롯됐다. 관객이 영화를 감상할 때 눈보다 귀를 더 앞세웠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이 감독은 "사운드를 주된 지각 요소로 가져가려고 할 때, 프레임 바깥의 소리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며 "영화를 구성하는 많은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프레이밍(화면 구성)을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그 소리마저도 색다르게 구성했다.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 남자를 대신하는 기계음을 비롯해 몽골의 소리 창법인 '흐미' 등 다양한 음향이 합쳐지며 관객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하는 방식도 이 감독이 목표한 지점이었다. 영화에는 이 감독이 실제 사촌 형 부부와 나눈 대화 등이 삽입됐다.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지 한 달여밖에 안 된 작년 1월에 대부분이 완성될 정도로 빠르게 제작됐다. 당시 느낀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 감독은 아내이자 '아워 미드나잇'(2021)의 연출자인 임정은 감독을 설득해 함께 직접 연기했다. 이 감독은 연출 외에 각본, 촬영, 편집, 조명, 음악, 미술 등을 도맡았고 임 감독은 제작을 책임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지난달 열린 제14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최고상인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상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오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감독은 "예상하지 못하게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개봉하게 돼 얼떨떨하다"고 했다.
독립영화가 영화 매체의 본질을 실험하고 관객이 이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이 감독의 철학에 비춰봤을 때 이는 예견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장편 데뷔작 '검은 여름'(2017)을 비롯해 독립영화를 꾸준히 찍어온 그는 어느 때부터 "실험실에 들어가는 과학자의 마음"이라고 했다. 실험 정신을 갖춘 그가 차기작으로 선보일 누아르 영화도 기대를 모은다.
"새로운 영화적 시선으로 갈 때 저 스스로가 재밌는 것 같아요. 관객분들이 '미명'을 보시고 '이런 식의 영화도 성립할 수 있구나', '내게 이런 감각을 줄 수 있구나' 하시며 영화 매체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셨으면 해요."
'미명'은 주문형비디오(VOD) 출시 등 없이 오직 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ncounter24@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