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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 내한 공연…세련된 사운드·복고풍 영상으로 과거·미래 교차
사카모토 류이치 개사 '라디오액티비티'로 반핵(反核) 메시지…"지금 당장 그만둬라"

[크라프트베르크 인스타그램.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지난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 설치된 대형 LED에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디지털 숫자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독일어로 '하나 둘 셋 넷…'을 반복하는 사운드는 미래 지향적이었지만, LED에 표출된 연두색 숫자들은 묘하게도 1980년대 MS-도스 시절의 질감이었다.
잘게 쪼개진 비트에 버무려진 신나는 전자(일렉트로닉) 음악이 1천600명의 관객을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디지털 신세계로 안내했다.
바로 독일의 전자 음악 거장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지난 2019년 이래 7년 만에 연 내한 공연에서다.
지난 1970년 랄프 휘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로 결성한 크라프트베르크는 반세기 넘도록 혁신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전자 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해 왔다.
'아우토반'(Autobahn·1974년), '라디오-액티비티'(Radio-Activity·1975년), '트랜스-유럽 익스프레스'(Trans-Europe Express·1977년), '더 맨-머신'(The Man-Machine·1978년), '컴퓨터 월드'(Computer World·1981년) 등 그간 이들이 내놓은 앨범은 대중음악계에서 전자 음악이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수십 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이들의 음악은 전자 음악을 넘어 팝, 댄스, 신스팝, 힙합은 물론 심지어 K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크라프트베르크 인스타그램. 재판매 및 DB 금지]
크라프트베르크는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대표작 '아우토반' 앨범은 2015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들은 2017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으로 제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을 수상하기도 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현재 유일한 원년 멤버인 랄프 휘터를 비롯해 헤닝 슈미츠, 팔크 그리펜하겐, 게오르크 봉가르츠 4인조로 구성돼 있다.
무대 뒤 LED에 지구 주변을 도는 비행접시가 등장하고, 지도가 한반도로 클로즈업되자 "와∼"하는 환호가 쏟아졌다. 비행접시는 지구를 한 바퀴 돈 뒤 서울을 상징하는 롯데월드타워 인근을 지나 공연장인 명화라이브홀 앞에 착륙했다.
총천연색 네온 조명을 두른 독특한 의상을 입은 네 멤버는 '멀티미디어 투어'라는 이름의 공연명과 잘 어울리는 영상으로 내한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약 2시간에 걸친 이날 공연에서 사운드와 더불어 LED 전광판에 표출한 영상과 네온 조명 의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에도 심혈을 쏟았다.
시대를 앞서나간 사운드에 옛 흑백 실사 영상 혹은 복고풍 CG가 배치됐는데, 이로 인한 이질감마저 힙(HIP)하게 느껴졌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이 같은 연출은 또한 공구 상점가 인근 옛 영화관을 리모델링해 전문 공연장으로 만든 명화라이브홀의 역사와도 퍽 잘 어울렸다.
이들은 '에어웨이브스'(Airwaves)에서는 '파동이 진동하면 먼 곳의 목소리가 노래하네'(Wenn Wellen schwingen ferne Stimmen singen)라고 읊었고, 때마침 LED 전광판에서는 흑백의 파동이 일렁였다.
이어진 대표곡 '맨머신'(Manmachine) 무대에서는 반복되는 '머신'(MACHINE)이라는 글자와 딱딱한 사각형 이미지가 반복돼 나타났다. 한층 차가워지고 정교해진 사운드와 맞물리면서 멤버들은 마치 'AI(인공지능) 시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크라프트베르크 인스타그램. 재판매 및 DB 금지]
크라프트베르크는 '아우토반'에서는 자동차가 질주하며 경적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들려줬고, '트랜스-유럽 익스프레스'에서는 철로를 달리는 기차가 내는 '철컹철컹'하는 사운드를 실감 나게 재현해내 탄성을 끌어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이날 일본의 음악 거장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와의 인연을 짤막하게 소개할 때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랄프 휘터는 1981년 사카모토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서 "도쿄에서 열린 '노 뉴크스 페스티벌'(No Nukes Festival·반핵 행사)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라디오액티비티'를 위한 새로운 일본어 가사를 써 줬다"고 말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그러면서 사카모토의 대표 히트곡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Lawrence)에 이어 반핵(反核) 메시지를 담은 '라디오액티비티'를 연주했다.
이들은 '라디오액티비티'에서는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도시의 이름을 열거한 뒤 일본어로 "방사능 지금 당장 그만둬라"라고 외쳐 눈길을 끌었다.
공연이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차분했던 분위기는 축제처럼 달아올랐다. 흥겨운 사운드가 홍수처럼 객석을 향해 밀려들었고, 관객들은 이에 맞춰 '뮤직 논스탑!'(Music NonStop)을 떼창으로 외쳐 호응했다.
크라프트베르크가 이날 앙코르곡 '로봇'(Robot)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향해 인사를 건네자, 관객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크라프트베르크 인스타그램. 재판매 및 DB 금지]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크라프트베르크는 전자 음악의 비틀스나 레드 제플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계 전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입체 음향 콘서트나 3D 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공연 등 신선한 멀티미디어 실험도 많이 했다"며 "로봇이나 컴퓨터를 소재로 한 세계관을 통해 현대 사회의 비인간성을 드러낸 선구적인 팀"이라고 설명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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