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12살에 겪은 엄마의 죽음…"고통스럽지만 만들고픈 다큐였죠"

입력 2026-05-04 14:06:33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전주영화제 상영 '잃어버린 말들'의 이민숙 감독…가족 비극의 근원 탐구


"한국 현대사 폭력, 가정까지 들어와…진실 알 수 없지만 질문해야"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 이민숙 감독

(전주=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의 이민숙 감독이 2일 전북 전주영화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5.02. encounter24@yna.co.kr


(전주=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12살이던 어느 날 엄마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날이었다. 엄마가 아파트 앞 잔디에 누워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아빠와 병원에 갔다.


이것이 엄마가 돌아가신 날 이민숙(56) 감독이 기억하는 조각들이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말들'(There Are No Words)은 이날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이 감독은 카메라를 들었다.


"엄마의 자살은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어요. 말하기 매우 어려운 사건인데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이기도 하죠. 언제나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적인 준비와 연출 솜씨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2일 전북 전주영화호텔에서 만난 이 감독은 '잃어버린 말들'을 제작하는 데 많은 주저함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억하기 두려운 날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말들'은 이 감독이 엄마의 삶을 통해 가족 비극의 근원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전주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이민자로, 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 이민숙 감독

[ⓒKelly Lui. 재판매 및 DB금지]


이 감독이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자전적 이야기를 본격 추진하게 된 계기는 2020년 확산한 코로나19였다.


"당시 아빠가 80대였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시는 걸 보고 아빠도 곧 돌아가실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다는 건 저희 엄마가 두 번째로 돌아가시는 것과 같았거든요. 당신만이 알고 있던 엄마 이야기를 그냥 갖고 가시는 것이니까요. 엄마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사라진다고 생각했어요."


이 감독은 제작을 결심하고 아빠와의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아빠는 이 감독에게 여러모로 대화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아빠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서로 쓰는 언어도 달랐다. 이 감독은 한국어가, 아빠는 영어가 어색했다. 영화에 나오는 '이 감독-통역자-아빠'라는 삼각 구도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 속 장면

[ⓒDanielle Viau.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 감독은 아빠 외에 엄마가 지내던 전남 화순을 찾아 삼촌, 당시 이웃 등을 만나며 엄마에 관한 기억을 수집했다. 엄마의 죽음에 관한 검시 보고서,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호적 등 다양한 문서도 들여다봤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엄마가 화순에서 남자도 꼼짝 못 하게 할 정도의 여걸이었다는 점, 정보부에 근무하던 아빠가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 화순으로 간 점 등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기억 속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엄마'와 증언 속 '활달한 엄마' 간의 괴리는 이 감독의 시선을 가정 내 폭력을 넘어 한국 현대사로까지 닿게 했다. 군부 독재 등으로부터 비롯된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가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교육을 받은 군인들의 폭력은 전쟁터에서 끝나지 않고 가정으로까지 들어와요. 아버지가 정보부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군사화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영화는 그날의 기억을 거쳐 부모의 삶, 당시 한국 사회까지 자연스럽게 비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 속 장면

[ⓒDanielle Viau.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영화는 조각난 진실이라는 또 다른 주제도 다룬다. 이 감독이 만난 사람들의 기억은 때로 서로 배치되고 특정 부분은 감춰지기도 한다. 이 감독의 아빠가 인터뷰하겠다는 딸의 말에 거짓말해도 되느냐고 묻는 장면은 증언이 가진 한계를 내포한다.


이 감독은 "아빠를 믿을 수 없는 내레이터로 설정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완전히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며 "제 기억조차 불안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건 진실의 일부일 뿐"이라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몰라도 질문해야 한다. 그것조차 안 하면 아예 모른 채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잃어버린 말들' 속 장면

[ⓒDanielle Viau.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 감독은 그렇게 질문을 던지며 20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멕시코인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계약'(2003), 남북분단에 얽힌 평범한 가족의 비극을 그린 '호랑이 정신'(2008) 등 그의 시선은 주로 이민자·이산 가족과 같은 '경계인'으로 향했다. '호랑이 정신'으로 2009년 캐나다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24회 제미나이(Gemeni) 어워즈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는 등 성과도 인정받았다.


그의 차기작은 남북 분단에 관한 이야기다.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를 다룰 계획이다.


"K팝·드라마·뷰티 등으로 글로벌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휴전이지, 종전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같아요. 글로벌 권력들은 남북통일이나 종전보다는 현재의 분단 상태를 선호하는 것 같고요. 교포인 저는 조금 더 자유로운 외부인의 시선에서 현재 상황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ncounter24@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