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88세 현역' 쟈니 리 "미군 집서 들은 냇킹콜 노래가 인생 바꿨죠"

입력 2026-04-20 10:54:45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정식 데뷔 60주년 맞아 회고록 '뜨거운 안녕' 내고 공연


만주서 태어나 북한→6·25 피란, 삶이 곧 격동의 현대사

"본명은 영길, 美 장교가 예명 지어줘, 피란길서 먹은 수프 생각 나"

"산 넘고 물 건너 노래…죽는 날까지 음악 놓지 않겠다"




포즈 취하는 가수 쟈니 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가수 쟈니 리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4.20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반 부산. 동란으로 부모와 헤어지고 홀로 미군 부대 앞을 서성이던 굶주린 10대 영길 앞으로 한 미군 장교가 다가왔다.


이 낯선 군인이 영길을 데려간 곳은 자신의 관저였다. 그곳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이 가득했던 당대 부산 거리와 달리 매일 저녁 흥겨운 파티가 열렸다.


이 군인은 피아노 앞에서 영길이 생전 처음 듣는 음악인 냇 킹 콜의 '투 영'(Too Young)을 흥얼거렸다. 얼마 가지 않아 영길도 제법 이 노래를 따라 하게 되자, 그는 영길에게 물었다.


"이 노래, 너도 불러볼래?"


이 한마디가 가수 쟈니 리(88·본명 이영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뜨거운 안녕'과 '사노라면' 등으로 유명한 쟈니 리가 자신의 히트곡 제목을 딴 회고록 '뜨거운 안녕'을 출간하고, 오는 22일 오후 5시 서울 용산아트홀 소극장 가람홀에서 동명의 기념 공연을 연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쟈니 리는 "양아버지(해당 미군 장교를 지칭)와 '투 영'이 내 인생을 바꿨다. 쟈니라는 영어 이름도 그가 지어둔 것"이라며 "지금도 '투 영'을 들으면 가슴이 절절해진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산전수전(山戰水戰)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바람을 헤치며 살아온 사람"이라며 "내가 죽는 날까지 노래와 음악은 놓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포즈 취하는 가수 쟈니 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가수 쟈니 리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4.20 scape@yna.co.kr


쟈니 리는 1950년대 후반 쇼 단체 '쇼보트'에서 노래하기 시작해 1966년 개봉한 영화 '황야의 무법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우리 말 가사를 붙인 '방랑의 휘파람'과 같은 해 직접 출연한 영화 '청춘 대학' 삽입곡으로 데뷔했다. 그는 1966년 발표한 첫 앨범에 수록된 '뜨거운 안녕'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196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청춘들이 많이 듣던 MBC 라디오 프로그램 '한밤의 음악 편지'에 '뜨거운 안녕'이 몇 차례 선곡된 이후 노래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서울 시내 길거리마다 레코드판에서 그 노래가 나올 정도였죠."


쟈니 리는 히트의 비결을 묻자 "고운 목소리와 한 맺힌 듯한 거친 목소리가 공존했다는 점이 솔(Soul) 같은 세련된 흑인 음악과도 닮지 않았나 한다"며 "당대 가수들은 주로 정장을 입고 노래했는데, 나는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선배 가수들에게 지적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팬들은 그걸 보고 뒤집어졌다"며 웃음 지었다.


쟈니 리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멋들어진 선글라스에 회색 롱코트 차림으로 여전한 패션 감각을 보여줬다. 코트 색깔과도 닮은 은빛 머리가 세월을 실감케 했지만, 이마저도 '씨익' 웃는 그의 환한 미소와 제법 잘 어울렸다.


88년 인생 여정을 되짚어 보면 '산 넘고 물 건넜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쟈니 리의 삶 자체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축약본 같았다.




쟈니 리 회고록 출판기념 공연 '뜨거운 안녕'

[쟈니 리 회고록 출판준비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38년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에서 평양 기생 학교 출신 어머니와 연극배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외가가 있던 평안남도 진남포(현 남포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대 위의 한 남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네 아버지"라고 하던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의 전부다.


쟈니 리는 "옛날 기생은 서예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일종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며 "그래서 내게 음악의 DNA가 있는 듯하다"고 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너라도 남쪽으로 가라"는 외할머니의 말에 쟈니 리는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싣고 혈혈단신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피란민 수용소, 고아원, 마구간 등을 전전하던 그는 미군 장교를 만나며 음악을 접하고, 이후 쇼 단체에 들어가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듣고 있자니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 테지…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던 대표곡 '사노라면'의 가사가 절로 떠올랐다.


"피란길 수송선에 사람이 참 많았던 게 기억나요. 배 안에서 안남미로 만든 밥하고 미국식 수프를 얻어먹은 게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지만, 큰 수술을 받고 병마를 이겨냈다. "어릴 적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는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추억의 가수로 회자하던 그가 다시 한번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계기는 지난 2021년 MBC 경연 프로그램 '복면가왕'이었다. 쟈니 리는 '빈대떡 신사'라는 이름으로 '동백 아가씨'(이미자), '사랑을 잃어버린 나'(이광조), '바보처럼 살았군요'(김도향) 등을 불러 쟁쟁한 후배 가수를 제치고 세 차례나 가왕에 올랐다.


그는 "정체를 가리는 콘셉트의 방송이다 보니 녹화 후 퇴근길에도 복면을 써야 했다"며 "이 나이에 3연승을 하니 담당 작가들이 난리가 났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며 뿌듯해했다.




공연 앞둔 쟈니 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가수 쟈니 리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쟈니 리는 자신의 히트곡 제목을 딴 회고록 '뜨거운 안녕'을 출간하고, 오는 22일 동명의 기념 공연을 연다. 2026.4.20 scape@yna.co.kr


쟈니 리는 이번 회고록 출간 기념 공연에서 대표곡을 비롯해 인생사를 가사로 녹여낸 2024년 발매곡 '쟈니 블루스' 등을 들려준다. 태진아, 임희숙, 이철식, 조문철 등 후배 가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그는 "앞뒤 생각 안 하고 가는 데로 살며 노래만 불러왔다. 지금도 노래할 때는 온몸의 정열을 다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다"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90세를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목소리가 나와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말했다.


tsl@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