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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하늘은 멀어도' 부른 미남·미성 가수 금호동 별세

입력 2024-02-19 15:22:13


미성 활용 고음으로 인기·히트곡 영화화도…일본 활동도 펼쳐




가수 금호동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고향 하늘은 멀어도'·'내일 또 만납시다' 등의 히트곡으로 1960년대 인기를 끈 '미남 가수' 금호동(본명 서문석)이 지난 18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고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가 전했다. 향년 85세.


1939년 일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8년 참가하는 콩쿠르마다 '보기 드문 미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당시 국내 유명 레코드사였던 오아시스 레코드사 전속가수 모집에 참여해 1등을 차지하며 전속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심사위원인 작곡가 이재호는 그를 보고 '외모가 호동왕자를 닮았다'며 금호동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금호동은 1959년 이재호 작곡의 '신의주 사나이'로 데뷔해 '눈물의 모자등', '봄 없는 청춘', '호남선 밤열차' 등을 발표한 뒤 같은 해 11월 육군 군악대로 입대했다.


그는 1962년 8월 전역 후 작곡가 박춘석과 콤비를 이뤄 활동을 재개했다. 1963년 '산유화'를 시작으로 '현해탄아 잘있거라', '고향 하늘은 멀어도' 등이 히트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박성서 평론가는 "금호동은 남자 가수라면 으레 저음 가수여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품격 있는 고음을 구사해 인기를 누렸다"고 평했다.




노년의 가수 금호동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대표곡인 '고향 하늘은 멀어도'는 당시 동아방송에서 13주 연속, '내일 또 만납시다'는 9주 연속, '고교 3년생'은 8주 연속 각각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같은 인기에 히트곡 '내일 또 만납시다'는 1964년 노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고, 금호동은 직접 여기에 출연하기도 했다.


금호동은 그러나 연예인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1965년 은퇴를 선언해 어느 사찰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를 애타게 찾는 수백 통의 팬레터에 약 1년 뒤 일본에서 복귀했다. 이는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려는 취지였다.


금호동은 일본 활동 당시 NHK에 출연해 대표곡 '고교 3년생'으로 동명의 일본 노래를 부른 현지 가수 후나키 가즈오와 노래 대결도 펼쳤다.




금호동의 대표곡 '고향 하늘은 멀어도'가 수록된 음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금호동은 일본에서 화제를 모은 뒤 이후 국내 무대에도 복귀해 '그토록 오랜 세월', 직접 작사·작곡한 '안녕하십니까', 반야월 작사·나화랑 작곡의 '서울행진곡' 등을 발표했다.


금호동은 1972년 마지막 음반을 내놓은 뒤 독학으로 역술과 침술 등을 배웠다. 그는 약 3개월 전 대장암이 발견돼 수술했고, 항암 치료를 받는 도중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장남은 뮤지컬 '겨울 나그네'에도 출연한 배우 서창우다.


빈소는 김포아너스힐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낮 12시 30분.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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