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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주도한 ‘메카 동맹’에 이어 카타르 포함 ‘바드르 구상’ 출범
UAE는 親이스라엘… 미국 없이도 ‘사막 위 번영’ 지키려 합종연횡
10월 21일 카타르 도하에서 주목할 만한 안보 구상이 출범했다. 튀르키예,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카타르 등 4국의 ‘바드르(Badr) 양해각서’ 서명식과 함께였다. 앞서 8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이 집단 안보조약 ‘메카 동맹’을 결성했다. 두 달 남짓 시차를 두고 수니파 이슬람 안보협력 두 축이 등장한 셈이다. 이변이 없을 경우 둘은 향후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합하면 5국 6억7000만명 규모다. 메카 동맹 가입을 저울질하는 이집트까지 참여하면 8억명에 육박한다.
예사롭지 않다. 메카 동맹이 군사조약이라면, 바드르 구상은 안보 생태계다. 방위산업의 공동 연구·개발과 생산, 그리고 합동훈련을 약속했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 인도네시아의 합류로 협력의 지평도 넓어졌다. 동남아, 서남아, 중동 그리고 유럽의 문턱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이슬람 안보 공동체가 출범한 셈이다. 호사가들은 “메카에 보름달(바드르)이 떴다”며, 이슬람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다소 섣부른 기대를 내비치기도 하고, 반대로 종교의 정치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갑자기 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을까? 이란 전쟁 때문이다. 전쟁의 최대 피해국인 걸프 왕정, 특히 사우디가 나섰다. 사막에 일군 번영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리야드, 제다, 두바이, 아부다비 그리고 도하의 마천루는 상전벽해의 증거이자, 미래를 향한 왕실 비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두바이를 대표하는 호텔 테라스가 불타고, 사우디의 관문 리야드 킹칼레드 국제공항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석유 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아람코 건물과, 혈맥인 송유관 시설도 공격받았다. 세계 최대 LNG 생산 거점인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도 가동이 중단되고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승객들이 대피하고 있다. 외신은 이날 공격으로 13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X
전쟁은 축적된 갈등과 모순이 임계점을 넘으면서 일어나는 파괴 현상이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나 질서를 배태하기도 한다. 사우디는 기존 전략이던 ‘안보의 외주(外注)’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방은 미국에 맡긴 후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기지 제공과 첨단무기 구매의 대가로 미국의 안보 우산을 확보했다. 든든했다. 초강대국 미군이 지켜주는 나라를 누가 건드릴까.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막대한 대미투자도 약속하며 믿음을 다졌다. 그러나 전쟁을 막아주어야 할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오히려 전쟁을 일으켰다.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 앞에서 미국 방공망은 완벽하지 않았고, 걸프 방어 의지도 불확실했다. 세계 최강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폭우를 고스란히 맞은 셈이다.
메카 동맹과 바드르 구상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미국에 일괄 턴키로 맡긴 안보 구도를 점진적으로 바꾸려 한다. 걸프의 자본, 튀르키예의 방산 역량과 나토의 합동 전력 운용 경험, 파키스탄의 핵전력과 실전 역량, 인도네시아의 생산기반과 아세안 시장이 구성하는 안보 생태계를 꿈꾼다. 양자에 모두 참여한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은 이슬람권 군사 네트워크의 연결축이 된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사우디와 카타르는 이제 장기적으로 이슬람권 내부에서 대체재를 찾을 준비를 시작한 셈이다. 물론 당장 미국을 대신할 세력은 아직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명칭도 상징적이다. 메카는 전 세계 무슬림을 관통하는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적 중심이다. 이지러지지 않은 보름달 바드르는 624년 초기 무슬림 공동체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이슬람 최초의 대규모 전투 이름이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 낸 초기 무슬림 공동체의 역사적 승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종교적 상징을 공유하면서 현실적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이중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지난 3월 1일(현지 시각) 이란의 공격을 받아 아랍에미리트(UAE) 제벨 알리항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와중에 눈에 띄는 국가가 하나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다. 메카 동맹과 바드르 구상에 참여하지 않은 UAE는 사우디나 카타르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 이후 이스라엘과 군사, 경제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이란의 실존적 위협 앞에, 이스라엘과의 연대가 자국 안보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UAE에 아이언돔을 비롯한 다층 방공망을 구축했다. 사우디와 카타르가 이슬람권 내부 연대에 무게를 둔다면 UAE는 이스라엘, 나아가 미국·유럽과의 협력 심화가 안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UAE 역시 미국에 대한 불신이 사우디 못지않게 크고, 이스라엘과의 협력도 부담이다. 그러므로 언제든 메카 동맹이나 바드르 구상에 참여할 유인은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슬람권 독자 방어망보다는 미국·이스라엘과의 연대를 주축으로 독자적 안보 다변화에 나설 태세다. 중동 최고의 전략가로 알려진 모하메드 대통령의 판단이기에 무게감이 남다르다.
이렇듯 걸프 왕정 국가들은 이제 아라비아 부족 정체성 연대는 물론, 익숙했던 국가 전략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 난세에는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메카 동맹과 바드르 구상은 혼돈기 중동의 안보질서 구축을 위한 모범적 사례이자 전환의 이정표로 기억될지 모른다. 반면 공동안보 약속이 실제적 방위력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UAE의 선택이 더 현명했노라 결론지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걸프 국가들이 사막 위에 일군 번영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답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동맹이 느슨해지는 시대,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의 시도를 통해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사막 위에 솟은 마천루의 현재 높이가 아니다. 위기에서도 세워나가야 할 미래의 비전이다. 지금은 어둡고 거칠지만, 메카에 뜬 보름달이 밤을 밝히고, 이들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400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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