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봉

제주바다 거북이와 부산바다 부캉이

입력 2026-10-17 23: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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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항의 아침은 언제나 차가운 철골과 회색빛 콘크리트 냄새로 시작되곤 했습니다 . 거대한 크레인이 기계음을 내며 수평선을 가로지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고개를 숙인 채 빌딩 숲을 향해 발길을 옮기던 곳 . 바다는 그저 도시의 끝자락에 덤처럼 딸려있는 , 혹은 차갑게 마주하는 수면에 불과했습니다 .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차갑고 덤덤했던 북항 수로에 작은 온기 하나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흑상어 한 마리 . 사람들은 녀석에게 ' 부캉이 ' 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 그 작은 지느러미 하나를 보기 위해 , 지난 휴일을 지나 어느덧 140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항을 찾았습니다 . 난간에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는 오랜만에 모니터가 아닌 , 살아 숨 쉬는 푸른 바다가 담겨 있었습니다 . 문득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가만히 수면을 오가는 부캉이를 바라보다가 , 가슴 한구석에 잔잔한 질문 하나가 물결처럼 일었습니다 . " 부캉이는 ... 과연 그저 길을 잃고 흘러들어온 상어에 불과할까 ?" 우리가 기억하는 상어는 늘 거칠고 두려운 포식자였습니다 . 날카로운 이빨과 서늘한 지느러미 ,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경계의 대상 . 하지만 북항의 부캉이는 달랐습니다 . 녀석은 좁은 수로 안을 조용히 사유하듯 헤엄치며 , 삭막했던 도시의 유리를 깨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가만히 걸어 들어왔습니다 . 부캉이가 나타난 이후 , 북항의 풍경은 참 다정하게 변했습니다 . 늘 앞만 보고 걷던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바닷가를 향해 걸었습니다 .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볼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부모와 자식이 같은 수평선을 오랫동안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 어릴 적 포구에서 헤어진 후 잊고 지내던 옛 친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는 이들의 얼굴에도 잊고 있던 순수한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 어쩌면 부캉이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쳐 바다를 잊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 를 되찾아주기 위해 찾아온 작고 다정한 전령이 아니었을까요 ? 옛날 내 고향 제주 포구의 어부들은 그물에 거북이가 걸려 올라오면 절대로 해치지 않았습니다 . 곤히 지친 거북이에게 맑은 막걸리 한 대접을 대접하며 거친 바다에서 고생했다 위로하고 , 다시 푸른 물결 속으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곤 했습니다 . 바다는 인간이 빼앗고 채취하는 곳이 아니라 , 거친 숨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다정한 이웃이라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온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바다를 너무 차갑게 대해왔습니다 .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바다의 밑바닥은 점차 사막화되어 가고 , 바다 생물들은 터전을 잃은 채 슬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 부캉이가 보여준 140 만 명의 기적은 ,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바다를 향한 우리의 미안함과 다정한 그리움이 뒤늦게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 상어 한 마리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 그 따뜻한 시선이 다시 바다로 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치유였습니다 . 이제 부캉이는 언젠가 자신이 태어났던 더 넓고 깊은 바다로 떠나갈 것입니다 . 녀석이 떠나고 나면 북항 수로는 다시 조용해지겠지만 , 녀석이 우리 가슴속에 남겨두고 간 ‘ 다정한 시선 ’ 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오늘 저녁 ,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 혹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아 줍니다 . 차가운 냉소가 아닌 , 바다의 깊이만큼이나 깊고 따뜻한 눈빛으로 딱 3 초만 다정하게 바라봐 주는 것 . 부캉이가 이 가을 , 140 만 명의 인파를 지나 우리에게 건네고 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바로 그 ‘ 다정한 눈빛 ’ 이었습니다 . 글을 쓰며 부캉이의 이야기와 옛 제주의 감성 , 그리고 마지막 1 분 20 초의 파도소리를 함께 담아 제작한 11 분짜리 비디오 에세이입니다 .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바다 소리가 필요하신 분들은 편안하게 감상해 보셔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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