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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지지와 숭배는 어디서 갈리는가? —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 갈등을 보며
최근 김지용 중수청장 인선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을 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실을 놓고 다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방식, 즉 세상을 이해하는 '이야기의 구조'를 놓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반드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연결한 사실들로 만들어 낸 해석을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다.
이것이 정치적 신념이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 정치적 지지와 숭배의 차이
정치적 지지는 지도자가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정치적 숭배는 지도자에 대한 믿음 자체를 보호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두 가지의 차이는 얼마나 열렬하게 지지하느냐가 아니다.
지도자를 강하게 지지하면서도 합리적일 수 있다. 반대로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종교처럼 숭배할 수 있다.
합리적인 지지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비판할 수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존 판단을 수정할 수 있고, 반대편의 주장이라도 타당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숭배에 가까워지면 판단 순서가 뒤바뀐다.
지도자가 옳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옳다고 믿기 시작한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누가 했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정치 진영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를 숭배하는 사람에게도, 노무현과 김대중을 숭배하는 사람에게도, 현재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2. 정치적 신념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숭배의 대상이 반드시 정치인 개인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검찰개혁, 민주주의, 정의, 진보, 보수 같은 정치적 가치도 절대적인 신념으로 굳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검찰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정치적 목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검찰개혁 방식이 옳다.'
→ '나와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이다.'
→ '따라서 그 사람은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처음에는 정당한 정치적 목표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방법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검찰개혁이라는 목표에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중수청의 조직 구성이나 수사권, 책임자 인선에서는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책적 논쟁은 사라지고 서로의 정치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싸움만 남게 된다.
3. 김지용 중수청장 논란을 보면
김지용이 검사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사실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
'김지용은 기존 검찰 조직 출신이다. 기존 검찰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
'김지용은 검찰 수사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중대범죄 수사기관을 운영하려면 수사 전문성과 조직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적절한 인사일 수 있다.'
같은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결론은 정반대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김지용의 실제 과거 행적, 수사 독립성에 대한 태도, 조직 운영 능력, 공직 윤리, 검찰개혁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논쟁에서는 이러한 검증 과정이 쉽게 생략된다.
'검사 출신이므로 친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좌천됐으므로 반윤이다.'
둘 다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주장이다.
특정 정권에서 좌천됐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정치적 성향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검찰 조직에서 일했다고 해서 특정 정치인에게 충성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사실 하나가 전체 인물에 대한 판단으로 확대되는 순간, 해석이 사실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4.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과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다르다
대통령이 김지용의 인선을 추진하는 데에는 나름의 판단과 근거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정 운영 책임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통령이 특정 인물의 과거 행적을 근거로 인선의 정당성을 설명한다면, 지지자 역시 그 근거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대통령의 인선에 반대하는 사람도 자신의 우려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검찰개혁에 역행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과 '반드시 검찰개혁을 방해할 것이다'라는 주장은 다르다.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과 미래의 행동을 확정적으로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대통령의 판단이 충분한 근거 위에 이루어졌는지 검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요구되는 비판적 지지다.
5. 이른바 '문조털래유의 반란'이라는 해석도 검증해야 한다
최근 여권 내부의 갈등을 두고 특정 정치 세력들이 이재명 정부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고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정치적 갈등의 배경에 단순한 정책적 이견 이상의 이해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
특정 인사들이 대통령의 인선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동기에 관한 해석이다.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별도의 증거가 필요한 주장이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저지르는 것과 똑같은 오류를 나 자신도 범할 수 있다.
특히 김어준이나 조국 등이 과거 윤석열을 어떻게 평가하고 지지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들의 과거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지금의 정치적 주장과 일관성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현재의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결론 내려서도 안 된다.
과거의 행적은 신뢰도를 평가하는 참고 자료일 수 있지만, 현재 주장의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6. 정치적 거짓말보다 더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선택적 사실 제시다
사실 왜곡이라고 하면 흔히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거짓말을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자체는 맞으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을 왜곡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정치인의 경력에서 부정적인 사실 다섯 개와 긍정적인 사실 다섯 개가 발견됐다고 가정해 보자.
한쪽은 부정적인 다섯 개만 보여준다.
다른 쪽은 긍정적인 다섯 개만 보여준다.
양쪽 모두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같은 정치인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된다.
사실의 선택, 배열, 맥락의 생략, 인과관계의 강조만으로도 현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영화가 특정 인물을 범인이라고 명시적으로 단정하지 않더라도, 여러 장면과 단서를 특정 방향으로 연결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의심할 수 있다.
물론 관객이 그렇게 해석했다고 해서 감독이 반드시 그런 의도를 가졌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작품에 나타난 사실, 연출을 통한 암시, 관객의 해석, 감독의 의도를 각각 구분해야 한다.
이것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 심지어 역사책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7. 인간은 왜 자신의 해석을 진실이라고 확신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로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언제나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한 다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원하는 결론이 존재하고, 그 결론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증거를 평가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에는 훨씬 높은 증거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당사자 자신도 충분히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믿을 수 있다.
더구나 정치적 신념이 개인의 정체성과 결합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적 명분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자신의 과거 선택,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논쟁에서 패배하는 것이 단순히 의견 하나를 수정하는 일이 아니게 된다.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 온 세계관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적 논쟁에서는 새로운 사실이 제시돼도 서로의 확신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8. 정치에는 종교와 닮은 측면이 있다
나는 국가와 정치에는 종교적인 성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신'과 같은 정치적 인물이 존재한다.
박정희일 수도 있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일 수도 있다. 이재명이나 다른 정치인일 수도 있다.
그 인물들이 실제로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문제는 어떤 인물의 업적이 그 사람을 비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순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업적과 과오를 함께 가질 수 있다.
어떤 인물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잘못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숭배가 시작되면 두 가지를 동시에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의 잘못은 축소하거나 정당화하고, 내가 반대하는 인물의 업적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태도라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믿음을 보호하는 태도에 가깝다.
9.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할까?
나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선택할 때 자신과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사회와 세계에 무엇이 유익한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치적 판단도 마찬가지다.
김지용이라는 사람이 친윤인지 반윤인지, 누가 그를 지지하고 반대하는지도 검토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수청이라는 기관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수사를 수행하며, 중대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검찰개혁 역시 특정 정치인의 승리나 패배를 위한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더 유익하고 권력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사법제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제도가 그 목표에 더 적합한지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인이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정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무엇이 유익한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그 판단 역시 실제 증거와 결과에 따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10. 결론 — 진짜 독립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정치적 독립성이란 정치적 견해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거나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자신만의 정치적 가치관과 판단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타나면 수정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거짓말과 모순을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믿고 있는 이야기의 모순을 찾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을까?
상대 진영의 주장은 철저하게 검증하면서 자기 진영의 주장은 쉽게 믿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신뢰하는 정치인이 한 행동을 상대 정치인이 똑같이 했다면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
결국 정치적 지지와 숭배를 가르는 기준은 확신의 강도가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세계관이 형성된다.
그런데 일단 형성된 세계관은 다시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 순환 과정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만 반복해서 소비한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
우리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정치적 양극화와 정보 과잉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상대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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