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봉

80년대 김민석 에 대한 기억

입력 2026-09-18 0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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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등학교지만 저희 때는 국민학교였습니다.


운동화보다 검정고무신이 더 흔했고, 눈이 오면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어쩌면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제 고향 전북 임실입니다. ‘전북하면 무진장 꼴짝’이라는 말이 있듯, 임실도 만만치 않은 시골이었습니다.

때는 전두환 대통령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운동장에서 축구하다가도 태극기 하강식 나팔이 울리면 가슴에 손을 얹던 먹먹한 시대였습니다.

그 무렵 여름이면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들이 저희 마을로 농활을 왔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의 시골꼬맹이들이 얼굴도 하얗고 멋져보이는 대학생 형, 누나들이 며칠 동안 마을에 머물며 야학도 하고, 노래도 가르쳐주고, 연극도 가르켜주고 했습니다. 학원도 유치원도 없던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신선하고 마음을 뺏길 만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30년의 시간이 흐른뒤에도 그때 왔던 형과 누나 이름도 기억 나는 사람이 있을정도로 어린날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최X식 형, 구X지 누나....

논농사 밭농사 힘든 일을 몸 사리지 않고 돕는 모습이 어린 눈에 참 멋져 보였습니다. 마을 어르신들도 참 고마워하셨고요. 그렇게 몇 해를 관계하면서 살았지요

적게는 90가구, 많을 때는 250가구까지 되던 제법 큰 마을이었습니다.

선거철이면 꿀도 돌리고 선물도 돌리던 시절, 마을은 대개 민정당과 국민당 지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민정당 쪽은 마을 잔치를 자주 열어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희 부모님을 포함한 대다수는 국민당 지지였고, 아버지는 당원이시기도 했습니다. 가을 수확 후 수입이 생기면 정치헌금도 내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광(창고)에서 먹을 것을 찾으려는데, 아버지께서 들어가지 말라며 “누가 있으니 아무 말 말고 모른 척 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농활 왔던 대학생 형들이 학생운동으로 쫓기다 시골까지 피신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을 어르신들은 지지 정당이 민정당이든 국민당이든 상관없이 그 학생들을 숨겨주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지서에서 순경이 나와도 모르는 일이라 하시고, 마을 제각(제사지내는곳)에 은신처를 만들고 식사를 은밀히 제공하며 지켜주셨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암울한 시절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시골어르신들의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지 알겠습니다.

그 학생들은 내려왔다 올라가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지켜주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학생들 중에 김민석 당대표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날 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월이 흘러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간간히 연락이 닿았다고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난 이후로는 연락을 받지 않더라고 하더군요. 그것이 우리 마을과 김민석 대표의 인연의 끝이었습니다.

당시 어르신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이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도 지금도 생생합니다. 무엇을 바래서 도운 것도 댓가를 바랬을것도 아니었을 텐데, 인간적인 배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정치 뉴스에 김민석 대표가 나올 때마다 그때 일이 떠올라 관심 있게 보게 됩니다. 매 순간의 선택과 행보, 그리고 최근 당대표 선거 과정을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사람 귀한 줄, 고마움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당대표가 되고나서의 행보는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실망의 끝을 보여주는것 같고요

정치를 떠나 사람으로서의 의리,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60대 사촌형과 우연히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났고 모든정황을 다 알수는 없을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마을도 몇 가구 안 남았고, 그때 어르신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분 안 계십니다.

익산으로 주소를 옮기셨다던데, 별거 아니어도 자신의 불타던 20대 시절을 지켜준 시골 마을에 한 번쯤 와주는 것이 그리 어려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지금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제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리라 생각이 드네요...

정치 뉴스 보다가 문득 떠올라 한 줄 적어봅니다.

“절대로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던 그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돕니다.

절대로 은혜같은거 안바라니 제발 사람귀한줄 알고 똑바로 정치 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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